패랭이꽃

by 진경환



고상한 대나무인 양 마디 닮았고(節肖此君高)

어여쁜 계집애처럼 꽃도 폈지만(花開兒女艶)

흩날려서는 한 가을도 못 견디니(飄零不耐秋)

대나무라 한 것은 분수 넘는 짓 아닌가(爲竹能無濫)

이규보의 「패랭이꽃(石竹花)」이라는 시다. 제 분수를 모른다고 패랭이꽃을 꾸짖었다. 이름을 ‘석죽화’라고 하다니, 깜냥도 못되면서 감히 대나무를 추종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패랭이꽃을 석죽화라고 이름붙인 것은 패랭이꽃이 아니고 바로 사람이다. 비난을 하려면 패랭이꽃에게 할 게 아니라 인간에게 해야 마땅하다. 내가 패랭이꽃이라면 대단히 억울할 것 같다.


‘패랭이’라는 말은 갓의 일종인 패랭이에서 온 것이다. 패랭이는 신분이 낮은 이들이 쓰던 쓰개다. 그래서 오히려 친근하다. 그리스어로 ‘신(神)’을 뜻하는 Dio에 꽃을 뜻하는 Anthos가 합쳐져 만들어진 그 학명 Dianthus라는 말보다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이덕무의 「여름날 이웃집(夏日題隣)」이라는 시가 그래서 더욱 정답고 좋다.


석죽화 붉어 나비 펄펄 날아들고(石竹花紅胡蝶飛)

서쪽 이웃 젊은 아낙네 베틀 소리 조용한데(西隣少婦靜鳴機)

주인은 한가히 창주 그림만 보고 있으니(主人倦看滄州畫)

온종일 바위 집에 세상 시비 할 것 없네(盡日巖軒無是非)


참고로 ‘창주’는 물이 맑고 푸른 물가라는 뜻으로, 은인이 사는 곳 또는 ‘시골’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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