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가 연암 박지원의 산문 열 편을 묶고 비평을 덧붙인 『종북소선(鐘北小選)』의 첫 글은 “한여름 밤에 모여 노닌 일을 적은 글”, 곧 “하야연기(夏夜讌記)”다. 여름날 밤 담헌 홍대용의 집에서 박지원과 그 벗들이 음악을 즐기며 노닌 일을 기록한 것이다.
“담헌이 슬(瑟)을 연주하자 당시 거문고의 명인 풍무(風舞) 김억이 화음을 맞추고, 국옹(麴翁)이 갓을 벗어던지고 노래를 불렀다.”
음악을 감상하는 벗들의 태도가 자못 심각하다.
“좌우에 앉은 사람들이 고요하니 말이 없는 게 마치 도가(道家)의 단(丹)을 닦는 이가 생각을 끊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같고, 참선 중인 승려가 전생을 문득 깨치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클래식 감상회 같이 진지한 분위기다.
그런데 “국옹은 노래를 부를 때 옷을 풀어 헤치고 턱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아 방약무인하였다.” ‘술 취한 늙은이’라는 호가 잘 어울린다. 어디든 이런 파격의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국옹의 포우즈는 ‘높은 경지에 오른 예술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형용하는 말로’, 『장자』 「전자방(田子方)」의 고사에서 유래한다고 박희병은 주석을 달아 설명하고 있다.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음악에 빠져들 때 혼자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내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실력 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자들의 깐죽거리는 치기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국옹은 어떤 사람일까?
덧. '종북'이란 '종각의 북쪽'이라는 뜻으로 이덕무가 살던 인사동 집을 의미하고, '소선'은 '작게 엮은 선집'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