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by 진경환

하루가 가고 다시 하루가 되니

하루는 언제 끝이 날 것인가


당신이 떠나고

까치 한 마리 창밖에서

아침을 울다 가고

집 앞 단풍나무는 채 붉어지지도 않은 단풍잎들을

발 아래 수북이 놓아버렸어요

손바닥만한 놀이터에서

와글지글 아이들 노는 소리가

머릿속을 까치집마냥 헝클어놓고

오늘 아침 처음으로 발이 시렸어요

하늘은 흙탕물처럼 먹먹해요

견인되어가는 검은 자동차 뒤로

손수레 할아버지가

진공상태로 뒤따라가고

초록색 마을버스도 천천히 골목을 도네요

화분의 난잎은 시들고

몸 마르는 소리 들려요

한낮인데도 깜깜한 방 안이 바위처럼 무거워요

머리맡의 고양이가 으응으응 돌아눕고

나도 그 곁에 조용히 누워 있어요


​하루가 가고 다시 하루가 되니


...

​고 권지숙 시인의 시 <먼 하루>이다. 시인이 밝혔듯이, 첫 두 줄은 김시습의 시 <一日>의 한 구절인 "一日復一日 / 一日何時窮"에서 빌려온 것이다.


김시습의 시 전문은 이렇다. 一日復一日 / 一日何時窮 / 天如輿輻轉 / 地似蟻封崇 / 俯仰岡涯涘 / 盈虛無始終 / 其間人世事 / 幾替幾興隆(하루 또 하루가 간다 / 하루가 어느때나 다 가나 / 하늘은 수레바퀴 도는 것 같고 / 땅은 개미가 언덕을 쌓는 것 같다 / 굽어보고 올려봐도 언덕과 물, 끝 없고 / 차고 기우는 것도 시작과 끝이 없도다 / 그 사이의 인간의 세상일 / 몇 번이나 갈아들고 몇 번이나 흥했던가)


...

아, 얼마나 많은 하루를 보내고 또 보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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