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先手)

by 진경환

"100자에 압축한 5000년 병법의 정수"라는 부제가 붙은 <병경백자(兵經百字)>를 읽어보니 제일 먼저 ‘선(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보다 뭔가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기(先機), 선수(先手), 선성(先聲)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선수를 친다”는 말은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선기’는 싸우기 전에 미리 이기는 계책을 시행하는 것으로, 적보다 먼저 유리한 시기를 차지하는 것이다.


‘선성’은 아군이 움직일 때 적의 계책을 저지하거나 억제시키는 것으로, 먼저 소문을 내거나 적을 놀라게 하여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선수’는 적보다 먼저 한 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적보다 유리한 상황이 되도록 먼저 수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적보다 먼저 상황을 명철하게 판단하여 다툼이 없는 방법으로 다툼을 중지하고 싸우지 않는 방법으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선천(先天)’이다.


오늘날은 상대를 이겨 나의 이익을 챙긴다는 부정적 의미의 “선수 치기”만 미덕이 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선수’는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1. 남이 하기 전에 앞질러 하는 행동 2. 먼저 손찌검을 함 또는 그 손찌검 3. 바둑이나 장기 따위에서, 먼저 놓거나 두는 일. 또는 상대편이 어떤 수를 쓰기 전에 먼저 중요한 자리에 두는 것”


어떻게든 남보다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서 이기고 봐야 한다는 게 현대의 생리가 된 것이다. 그 전제나 방법 그리고 절차 같은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약자나 패자의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먼저’는 명철한 태도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곧 모범이 될 수 있는 미덕인지는 역시 잘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 김수영 시인이 본격적으로 조명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몇 해 전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시집을 사보았던 터라, 그 열광이 뒷북치기 같이만 보였다. 슬그머니 물러서서 열을 올리는 동료들을 내려다 본 적도 있었다. 그때 어느 선배의 일갈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먼저 안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제대로 아느냐가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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