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여인과 관세음보살

by 진경환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첫 권은 〈본리지(本利志)〉다. 그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왜 본리(本利)라고 이름 지었는가? 옛 기록에 “봄에 밭 가는 것이 ‘본’이요 가을에 수확하는 것이 ‘리’다”라는 말이 있으니, 본리는 ‘밭 갈고 수확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밭 가는 것을 왜 본이라 하고, 수확하는 것을 왜 리라고 하는가? 옛날에 행상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어느 쪽이 이익이 많이 나는지를 서로 비교하였는데, 걸아가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때 길 가 조밭에서 이삭을 베던 한 아낙이 이삭 하나를 들어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뜻은 바로 씨앗 하나를 밑천으로 백배 천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밭 갈고 수확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밑천과 이득[本利]’이라 말한 것은 이것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아낙은 조 이삭 하나를 들어 장사꾼들의 왈가왈부를 무색케 했다. 두 가지가 생각난다. 지금 농사는 백배 천배의 이익은커녕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역사가 과연 발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을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경로’라 치부하는 것은 요설이요 망발이다.


이삭을 보여준 아낙에게서 저 신라 시대 원효가 만났던 관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원효가 남쪽 동구 밖에 이르니, 논 가운데 흰옷을 입은 한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원효가 장난삼아 그 벼를 달라고 하니, 여인도 벼가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장난삼아 대답했다.”


원효는 흰옷을 입은 여인이 관음의 현신인 줄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장난만 쳤다.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길을 떠난 원효의 노정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관음은 어마어마한 성인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장삼이사일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옛 책을 꺼내 읽어보면서 "피곤한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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