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영 시인의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다 보니, 최영미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원래 제목은 ‘마지막 섹스의 추억’이었단다. 표지 작업까지 마친 상황에서 당시 창비 영업부장 한기호 선생의 항의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최영미 시인을 “설득하고 설득하여 기어이 받아낸 제목이 뒷날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였다."
“설득하고 설득하여 기어이”라는 대목을 보니, 최영미 시인이 ‘마지막 섹스의 추억’을 고집했던 것 같다. 새삼 다시 읽어보니, 좋다. 시의 완성도(이런 게 있다면)에서 본다면, 나는 ‘잔치’보다 이 ‘섹스’가 훨씬 더 좋다. 이시영 시인의 말대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만 열광한 나머지, 나머지 수작들이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점을 나도 아쉬워한다.
아침상 오른 굴비 한 마리
발르다 나는 보았네
마침내 드러난 육신의 비밀
파헤쳐진 오장육부, 산산이 부서진 살점들
진실이란 이런 것인가
한꺼풀 벗기면 뼈와 살로만 수습돼
그날 밤 음부처럼 무섭도록 단순해지는 사연
죽은 살 찢으며 나는 알았네
상처도 산 자만이 걸치는 옷
더이상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그런 사랑 여러번 했네
찬란한 비늘, 겹겹이 구름 걷히자
우수수 쏟아지던 아침햇살
그 투명함에 놀라 껍질째 오그라들던 너와 나
누가 먼저 없이, 주섬주섬 온몸에
차가운 비늘을 꽂았지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안 가득 고여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