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음(唐音)》은 중국 원 나라 양사굉(楊士宏)이 당 나라의 좋은 시를 가려 뽑아 엮은 책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한시 입문자를 위하여 이 《당음》을 우리의 기호에 맞게 발췌하여 《당음정선(唐音精選)》이라 했다. 《당음》 중 우리 실정에 맞게 비교적 평이한 오언절구만 가려 뽑아, 거기에 한자의 평측을 나타내는 표점을 찍었다. 목판으로 찍어 낼 만큼 많이 읽힌 책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그것을 흔히 “마상당음(馬上唐音)”이라 불렀다. 처음 보는 이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다른 게 아니다. 《당음》에 첫 번째로 실린 것이 송지문(宋之問, ?~712)의 〈도중한식(途中寒食)〉이라는 시인데, 그 첫 구가 바로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이다. 거기서 “마상”을 따와 “마상당음”이라고 별칭을 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매우 흔하다. 원 나라의 승려 설암(雪庵)은 현판 등에 쓰는 큰 글자[大字]를 잘 썼는데, 그의 글자들을 모은 책 이름이 《병위삼첩(兵衛森帖)》이다. 역시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나오는 글자가 “병(兵)”, “위(衛)”, “삼(森)”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논어》의 첫 편명은 “학이(學而)”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편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중 첫 두 글자를 택했다. 요컨대 편의적인 명명인 것이다.
덧. 송지문 얘기가 나왔고, 곧 꽃이 필 터이니 그의 시 <생각난 바 있어(有所思)>의 한 구절을 꺼내본다.
해마다 피는 꽃의 모습은똑같으나
(年年歲歲花相似)
해마다 꽃을 보는 사람은 같지않네
(歲歲年年人不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