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각계수리

by 진경환

김삼불 선생의 《국문학참고도감》(1949)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854번 물건에 “각계수리”라는 가구가 보인다.(그림 1) 이름이 이상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았는데, 등재된 말이 아니다. 어릴 때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아 찾아보니, “가께수리”라는 말이 나타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몇 개 있고(그림 2),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여럿이 소장되어 있으며(그림 3), 서울역사박물관에서도 보인다.(그림 4) 이런 걸로 보아 “가께수리”는 확립된 어휘인 듯하다.


그런데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찾아보았더니, 그 말은 일본어 가께스즈리(がけすずり)에서 온 것이다. “가께수리는 일본의 현연(懸硯; がけすずり)에서 유래된 것이다. 현연은 밑에는 종이를, 위에는 벼루를 넣은 두 개의 상자를 포개 놓는 문방가구의 명칭으로 15∼16세기에 중국과의 무역이 활발하였던 오사카[大阪]의 사께이[堺]항구에서 사용하다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다도용(茶道用) 단스[簞笥]와 상선용(商船用) 금고인 가께수리의 두 가지 양식으로 발전되었고, 16∼17세기에 상업이 발달되면서 중인(中人)계층에서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구글링해서 보니 일본 것은 이렇다. (그림 5)

요컨대 김삼불 선생이 언급한 “각계수리”, 곧 “가께수리”는 일본말 “가께스즈리”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가구는 “우리 아버지가 통제사(統制使)가 되었을 때 김성절(金盛節)을 데리고 가서 각기소리(角其所里) 여덟 개를 만들고 그 안에다 기화(奇貨)를 가득 담아 김해(金海) 김순(金洵)에게 보내어 내통(內通)할 계제(階梯)로 삼았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고...”(『경종실록』 1722년 4월 20일) 운운에서 볼 때, 18세기 이전에 이미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덧. 이 가구는 원래 일본의 배 안에서 일종의 금고 역할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서인지, 상업이 성했던 개성에서 특히 발달했다고 한다. 피난 내려올 때 가지고 온 것은 아니겠지만, 어려서 우리 집에서 여럿 본 기억이 있다.


1.jpg
2.jpg
3.jpg
4.jpg
5.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씁쓸해 투덜대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