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 시절을 알아(好雨知時節)
봄이 되니 곧 내리기 시작한다(當春乃發生)
바람 따라 밤에 몰래 스며들어(隨風潛入夜)
소리 없이 촉촉이 만물을 적신다(潤物細無聲)
들판길 구름 낮게 깔려 어둡고(野徑雲俱黑)
강 위에 뜬 배의 불만이 밝다(江船火燭明)
새벽녘 분홍빛 비에 적은 곳 보니(曉看紅濕處)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花重錦官城)
이 ‘낯선’ 번역은 이병한 교수의 것이다.(『치자꽃 향기 코끝을 스치더니』, 민음사, 2000, 32면)
어느 노학자는 이 시의 제목을 <봄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로 번역한 바 있다. 험 잡기 같다는 혐의를 면키 어렵겠지만, 아무래도 ‘내리는’이라는 표현은 사려 깊지 않은 것 같다. 시방 시에서 화자는 새벽녘에 일어나 밤 새 '내린' 비에 젖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이 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견해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리니 만물이 생기를 얻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 것으로 농민들의 마음을 대신한 것이라는 설과, 때맞춰 내린 비에 금관성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날 것이니 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라는 향락적인 기대감을 읊은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둘이 어찌 별개의 견해이겠는가. 신경림 시인이 노래한 대로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한 사랑 노래」중에서) 말이다.
여하튼 이 시는 ‘밤-새벽’이라는 시간, ‘들-강’이라는 공간, ‘어둡고 밝은’ 색채의 대비를 전면에 내세워 ‘기쁨[喜]’을 묘사하고 있는데, 기분이 경박하게 달떠 있지 않고 차분해서 좋다. “어젯밤 송당에 비 내려 / 베갯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고려 시대 시인 고조기(高兆基)의 「산장우야(山莊雨夜)」)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그런데 다른 데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겠는데, 마지막 구절이 실로 어렵고도 어렵다. “금관성에 꽃들 활짝 피었네”의 원문은 ‘花重錦官城’이다. ‘금관성’을 빼면 ‘화중’만 남는다. ‘꽃들 활짝 피었네’는 사실 『두시언해(杜詩諺解)』의 ‘고지 해 폣도다’의 직역이므로(‘해’는 ‘많이’의 고어다.) 이 부분 번역의 저작권은 두시의 언해에 참여한 옛 문인학자들에게 있겠다. 그들은 의역을 감행하였다.
이 부분을 황동규 시인은 “꽃이 금관성을 짓누르다”로 해석했다. 역시 시인다운 상상이다. ‘활짝’이나 ‘많이’가 지닌 육체적이고 물량적인 해석과는 좀 다른 층위다. 그러나 너무 앞서 간 게 아닐까?
'화중(花重)’은 글자 그대로 ‘꽃이 무겁다’는 뜻이다. 밤새 비를 맞았을 테니 무거워 고개 숙일 만하다. 실제 큰 사전을 보면, ‘화중'은 '비를 흠뻑 머금은 꽃’이란 뜻이기도 하다. 이 축자 해석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밤새 비 맞아 고개 숙였다고 '슬프다'는 식의 촌스러운 상상으로 치닫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좀 달리 볼 길은 없을까? ‘중(重)’은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거듭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중복'의 의미다. 금관성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단[錦]을 그 이름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봄비마저 내렸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그래서 ‘화중’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역시 너무 초보적인 상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