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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r 28. 2024

네 가지 문제


어느 문필가의 '대중은 감정(정념)에 이끌려 이성을 배반한다'는 요지의 글을 읽었다. 네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그는 늘 '이성'을 강조하지만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감정'에 호소한다. 이번 선거국면에서 나는 그런 면모를 그에게서 자주 보았다. 삶과 글이 언제나 일관되게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그렇게 가려고 애는 써봐야 할 것이다.


둘째, 이성과 감정을 나누는 것은 서양철학의 오랜 전통, 곧 이원론적 사유이다. 그런데 이성과 감정을 함께 지니고 있는 나는 그 둘이 서로 균형을 맞출 때 세상이 좀 더 온당히 보였다. 감정이 이성보다 열등하다고 단정, 역설할 수 없다는 말이다.


셋째, 나는 그의 글에서 일종의 엘리트주의를 강하게 느낀다. 시민-집단은 사유하지 못하고 '드문 지성'만이 사유할 수 있다는 말에서 그걸 강하게 느꼈다. 실증주의 사관을 정립해 역사를 과학으로 정초하였지만, 노동자의 역사관을 부인한 랑케가 연상되었다면 모르면서 한 말일까?


넷째, 그는 "어리석은 대중"을 넘어 선 '지혜로운 시민 공공체'를 상상했다. 그런데 그런 이행에 지식인의 역할이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놓쳤다. 지식인은 우중을 사갈시하고 깔아뭉개는 자가 아니라 우중과 함께 '지혜로운 공동체'로 어깨겯고 나아가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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