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Mar 28. 2024

무당의 자식

김문(金汶, ?~1448)이란 사람은 특이하게도 어머니가 무당인 한미한 가문 출신이지만 학문은 높아 직제학까지 올랐다. 《세종실록(세종 30년, 1448년)에 이런 기록이 보인다.


 ---

문(汶)의 자(字)는 윤보(潤甫)인데, 세계(世系)가 본디 한미하여,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어머니가 무당노릇을 하여 감악사(紺嶽祠)에서 먹고 지냈다.”고 하였다. 문(汶)은 침작하고 중후하여 말이 적고, 젊어서는 학문을 즐겨 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와서 여러 번 옮겨 주부(注簿)가 되었고, 을묘년에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으로 뽑혀 직제학까지 승진하였다.


경서(經書)와 자사(子史)에 연구하여 궁달(窮達)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 학문은 통달하면서도 고루하지 아니하며, 박학하면서도 능히 정심(精深)하여서, 의리(義理)의 의심날 만한 것이나 전고(典故)의 상고할 만한 것을 묻는 자가 있으면, 즉시 대답해도 문득 맞으므로, 당세(當世)가 모두 탄복했으며, 임금도 또한 중히 여겼다.


그러나 능히 저술(著述)을 하지 못하여 무릇 글을 지으려면 반드시 동료에게 지어 달라고 하였다. 사람됨이 아집이 있고, 권모술수가 있어, 밖으로는 청렴하고 정숙한 것 같으나, 안으로는 실상 욕심이 많으며,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아부하지 않는 자는 미워하였다.


정인지(鄭麟趾)가 일찍이 문(汶)에게 대면하여 말하기를, “학문이란 심술(心術)을 바르게 함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하니, 문(汶)이 부끄러워하고 한스럽게 여겨, 제자 매좌(梅佐)를 데리고 뜰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밤새도록 자지 아니하였다. 병인년에 집현전에서 항소(抗疏)로써 시사(時事)를 하나하나 들어서 논할 적에 문(汶)은 병을 핑계하고 나오지 아니하였으며, 또 집의(執義) 정창손(鄭昌孫) 등이 언사(言事)로써 옥에 갇혔을 적에 온 집현전이 예궐(詣闕)하여 용서해 주기를 청하였으나, 문(汶)만이 홀로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여론이 비루하게 여겨 말하기를, “김문은 육경(六經)을 통하였으나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하였다. 이에 이르러 문(汶)을 명하여 사서(四書)를 역술(譯述)하게 하고, 특별히 자급을 승진시켜 바야흐로 장차 뽑아 쓰려고 하였는데, 중풍(中風)으로 폭사(暴死)하였다. 문(汶)이 항상 궁궐에 있을 적에 그 배운 것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자못 한스럽게 여기었다.


---

여러 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작가의 이전글 네 가지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