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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r 28. 2024

분류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진, 보르헤스가 참고했다는 중국 어느 사전의 동물 분류는 이렇다.


1. 황제에 속하는 동물 2.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처리 된 동물 3. 사육동물 4. 젖을 빠는 돼지 5. 인어 6. 전설상의 동물 7. 주인 없는 개 8. 이 부류에 포함되는 동물 9. 광포한 동물 10. 셀 수 없는 동물 11.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릴 수 있는 동물 12. 기타 13. 물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14. 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이른바 근대적 사유와는 다른 지식체계를 보여주는 예시다. “기타”가 12번에 끼어들어 있는 것도 흥미롭다. 그런데 오늘 이와 유사한 분류를 보았다.


유만주(兪晩柱, 1755~1788)는 일기인 《흠영(欽英)》(1778.8.13.)에서 자신의 ‘욕망’을 밝히고 있다. 38가지의 인물형으로 나누고 각각의 전기를 써 역사에 남기는 것이다.


1. 통달한 선비 2. 현명한 재상 3. 유학에 정통한 어진 선비 4. 절의를 지킨 사람 5. 명신(名臣) 6. 암혈에 은둔한 사람 7. 정직한 신하 8. 행적이 맑은 사람 9. 특정한 당파에 소속된 사람 10. 훌륭한 역사가 11. 청렴한 벼슬아치 12. 나라에 공훈을 세운 사람 13. 문장가 14. 용감한 무인 15. 유능한 신하 16. 왕족 중 빼어난 사람 17. 부마 중 이름난 사람 18. 효성스러운 사람 19. 굳세게 정절을 지킨 사람 20. 행실이 고상한 사람 21. 기이한 재능을 지닌 사람 22. 기예를 지닌 사람 23. 호걸과 협객 24. 비범한 기상을 지닌 사람 25. 방외인(方外人) 26. 이인(異人) 27. 신승(神僧) 28. 숨어 있는 신선 29. 척신(戚臣) 30. 편당을 짓는 사람 31. 탕평을 이룬 사람 32. 임금을 조와 왕권을 정립한 사람 33. 범용한 신하 34. 음란한 여자 35. 소인배 36. 왕의 총애를 받고 권력을 농단한 사람 37. 권세를 누린 간신배 38. 반란자


유만주가 한 분류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에 대해 총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한 그의 ‘욕망’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저기 중 어디에 그 흔적이나마 남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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