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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r 29. 2024

항민(恒民)


"천하에 두려워할 것은 오직 민(民)뿐이다. 민은 홍수, 화재,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 무도한 지배자들은 민을 업신여기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다."


허균은 <호민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민을 삼분(三分)한다. 지배자에게 이리저리 부림을 당해도 말없이 견디는 항민, 지배자의 폭압을 원망하는 원민(怨民), 모순적 지배 질서를 깨뜨리려는 호민(豪民)이다.


허균은 이들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호민이 ... 때를 노리다가 팔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 번 소리를 지르면, 원민들은 그 소리를 듣고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서도 함께 외치며, 항민은 살려고 호미, 고무레, 창, 창자루를 가지고 쫓아가 결국 무도한 놈들을 처죽이고 만다."


끝까지 싸워 마침내 세상을 뒤집고 마는 것은 항민이다. 오늘 이 점을 분명히 다시 강조해야 한다. 김수영의 말마따나 구원은 얘기치 않은 순간에 올 터인데, 그때 저 항민은 희망과 공포 사이에서 머뭇거리지도, 알량한 정세분석에 기대지도 않는다. 오직 살려고 죽기를 마다 않고 싸운다.


덧. 선거철이라고 한번 써 보았다. 파리코뮨 때 바리케이트를 친 저 항민의 역사는 그저 해프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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