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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Apr 07. 2024

“인환네 처갓집”


김수영 시인은 저 「거대한 뿌리」(1964)에서 박인환의 처갓집이 있는 동네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다. “傳統은 아무리 더러운 傳統이라도 좋다 나는 光化門 /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寅煥네 / 처갓집 옆의 지금은 埋立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 이 우울한 시대를 패러다이스처럼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인환네 처갓집 옆”이 어디쯤일까 궁금했었다. 찾아보니, 거기는 세종로 135번지로 지금 교보문고 본점 뒤쪽 어디쯤일 것 같다. 거기 어딘가의 개울, 당시는 매립한 그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개울물은 삼청동에서부터 내려와 지금의 민속박물관 앞을 지나 교보문고 뒤쪽을 넘어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이러한 추정이 가능케 한 사진을 발견했다. 조선총독부가 세워지면서 광화문은 잠시 옆으로 옮겨지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민속박물관 자리다. 광화문은 1925년 7월부터 1926년 9월까지 그 자리로 '피신'해 있었던 것이다. <사진 1>에서 바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앞에 다리가 하나 있고, 그 아래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장면이 찍혔다.


요컨대 “인환네 처갓집 옆”,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그곳은 바로 저 개울 아래 어느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 개울을 중학천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중부학당이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사진 2>는 멀리 동십자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사진 1>의 아래쪽일 것 같으니, 박인환 네 처가집 옆 개울은 아마 저 개울 언저리가 될 듯하다. <사진 3>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김수영이 시에서 "지금은 매립한 개울"이라 한 것이 이상한 것이다. <사진 4>에 따르면, 중학천이 매립된 것은 1965년이고, 시가 지어진 것은 1964년이니말이다.


내가 보기에 <사진 4>을 책에 실으면서 1965년이라고 잘못 기재를 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지금 친필 복사본으로 남아있는 「거대한 뿌리」에는 '1974년 2월 3일'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이다.<사진 5>


이 문제는 소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김수영 연구자들이 명확히 해명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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