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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Apr 14. 2024

산산(閂閊)


'否塞'이란 말이 있다. '부정(否定)'이라고 할 때의 '부'와 '새옹지마(塞翁之馬)'할 때의 '새'를 합쳐 '부새'라고 읽으면 안 된다. '비색'이라고 읽어야 한다.


여기서 '否(비)'는 『한서(漢書)』 「설선전(薛宣傳)」의 “인도(人道)가 통하지 않으면, 음과 양이 막힌다(夫人道不通, 則陰陽否鬲)”에서 보듯이, '鬲(격)' 곧 '막히다[閉]'의 뜻이다. '새옹지마'의 “새”라고 읽는 것은 그것보다 후대에 와서 덧붙여진 것이다.


"비색"의 대표적인 용례는 주자의 <대학장구서> 중 "회맹비색(晦盲否塞)"이다. "晦盲否塞, 反覆沈痼, 以及五季之衰而壞亂極矣." 어둡고 눈멀고 답답하고 막히게 되고 반복적으로 침체되고 고질이 되어 오계(당 나라에서 송 나라에 이르기 까지의 짧은 역사의 다섯 나라)의 시대가 쇠약해지며 변괴와 난리가 극에 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요즘 상황을 보면, “위 아래가 막히면, 정이 통하지 않는 것이 하나가 아니다.(上下否塞, 情之不通者非一)”라고 한 소식(蘇轍)의 말이 적실하지만, “산산(閂閊)”이란 말이 좀 더 어울릴 것 같다. 문을 빗장으로 걸어 닫았고, 문 열자 산이 턱 가로막혀 있다는 의미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나 모두 꽉 막힌 형국이다.


이럴 때 글을 안다는 자로서 난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뛰어난 선비는 운수가 막혔다고 해서 자기의 절개를 가벼이 하지 않는다(逸倫之士, 不以否塞而薄其節)”고 했는데, 나야 그런 사람이 아니니, “군자가 비색한 때를 당하여 나아가 뭔가 일을 하기 어려우면 물러나 아래에서 궁하게 살 뿐이다.(君子當否塞之時, 進不可有爲, 故退而窮於下而已)”라고 한 홍대용의 말에 의지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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