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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Apr 27. 2024

화(禍)와 욕(辱)

나는 지금 화(禍)를 당하고 있는가, 아니면 욕(辱)을 당하고 있는가


《주자집주》에 있는 사씨(謝氏)의 주석이 새삼 다가온다.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악인을 만나면 성인(聖人)은 괜찮지만, 성인 이하의 사람은 강직하면 반드시 화를 당하게 되고, 약하면 반드시 치욕을 받기 마련임을 민자건이 예견하고 대비했다’는 것이다.


《논어》의 해당 구절은 이렇다. “(계씨가 등용하려 하자, 민자건은 심부름 온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양한다는 뜻을 전해 주시오. 만약 나를 다시 찾아온다면 나는 분명히 문수(汶水) 가로 도망가 있을 것이오.”


일종의 망명 선언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 말이 거짓이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했다가 결국은 슬그머니 꽁지를 내리고 물러나는 따위들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결기다.


‘망명’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들을 이야기해야 겠다. 우리 시대 특기할 만한 망영으로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연루되어 출장 가 있던 프랑스에 눌러앉은 홍세화와 1980년 광주항쟁으로 수배되자 화물선 화장실에 숨어 35일을 밀항한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윤한봉의 경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 두 사람은 1947년 생 동갑이다. 당시 30대 중반들이었다. 윤한봉은 고생 고생하다가 저 세상사람이 되었고, 홍세화 역시 얼마전 이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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