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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Apr 27. 2024

다시 '포기'에 대하여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유분방하면서 솔직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면서 성실하지 못하며, 무지하면서도 신용이 없으면, 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子曰, 狂而不直, 侗而不愿, 悾悾而不信, 吾不知之矣.


《논어》의 이 구절은 인심이 예전 같지 않고, 오늘날은 옛날보다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吾不知之矣)”는 말은 공자가 불만을 표시하는 습관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구절은 공자가 싫어하는 인간 유형을 말하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애정[仁]을 갖고 있던 분도 이렇게 미워하는 감정을 갖는구나, 생각하니 나 같은 사람도 안심이 좀 된다. ‘인간론’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본 것으로는, 번역이 좀 과해서 문제였지만, 중국 후한 ~ 삼국 시대 유소(劉劭)가 쓴 『인물지』가 좋았다. 물론 『사기』 「열전」은 말할 필요 없겠다. 그런데 이런 인물평들을 읽다보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기보다는 내가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는 공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광(狂)’을 리링은 ‘자유분방하다’고 풀었다. 적절한 번역인 것 같다. 공자는 「자로」편에서 “광자(狂者)는 진취적이다”라고 했고, 주희는 “광자는 뜻은 지극히 높으나 행동이 말을 가리지 못하는 자”라고 풀이했다. 근래 유행한 ‘불광불급(不狂不及)’에서의 ‘광’도 이렇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양광(佯狂)’이라는 말이 있었다. ‘거짓으로 미친 척한다’는 뜻이다. 세상이 그의 능력과 포부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세모순(身世矛盾)’, ‘세여불합(世與不合)’이다. 이런 대표적인 인물로 김시습을 들 수 있다. 요즘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양광을 하지 않고는 살기 어렵지 않나 한다. 물론 그럴 만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서...


난화이진의 풀이로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면, 공자는 “겉으로는 호방하면서도 속마음은 정직하지 않는”, “외모로는 성실하면서도 속마음은 너그럽지 못한”, “속은 텅텅 비어 있으면서도 남도 자기도 믿지 않는” 사람을 미워했다. 한 구절씩 생각해 보려니 얼굴이 화끈거려 외면하고 싶어진다.


사람 관계에서 제일 마지막에 하는 것이 ‘포기’라고 생각한다. 리링과 난화이진 그리고 오규 소라이는 공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것을 각각 ‘습관적인 불만 표시’, ‘유머러스한 표현’, ‘가르칠 수 없다는 말’이라 했는데, 나는 주희가 “심히 거절하는 말”이라고 한 것에 동의한다. 상대와의 관계를 이제 포기하고 싶다는 표명으로 읽힌다. 더 이상 상종하기 싫다는, 다른 말로 이제 가망이 없다는 표명이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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