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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01. 2024

한의학, 관견 <1>


지금부터 쓰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관견(管見)’이다. 관견이란 대롱 구멍으로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좁은 소견’을 말한다. 나는 한의학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기 때문에 이 말을 겸사로 쓰지 않았음을 먼저 밝혀둔다.


알마 전 어떤 **증 카페에서 축출되었다. ‘한방’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 관리자는 한약을 ‘풀떼기’라고 타매했다. 물론 그런 카페에 들어가 보면 ‘어떤 것이 좋(았)다’거나 ‘무엇이 효과가 있(었)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설’들을 자주 볼 수 있어, 혼란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제한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의학, 한방 자체를 단칼에 배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전통문화 중 지금껏 그나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사주팔자 보는 것과 한의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한의학은 오랫동안 이 땅에서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 왔고, 지금도 훌륭한 한의사들이 도처에서 나름 애를 쓰고 있다. 그런데 한의사를 심지어 ‘무당’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처방의 합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매도한 것일 게다. 환자의 몸 상태 ‘등등’(이 부분에 대해서 나로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함)에 따라 처방이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한방의 특성을 그들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해열제나 소화제 같은 양약처럼 한방에는 표준 처방도 없고, 검증된 데이터도 없다는 얘기만 한다. (침이나 뜸 혹은 사혈과 같은 처치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한방의 과학화’, 이것은 사실 한의학 쪽에서 먼저 나온 말이다. 한방의 처방과 그 효과를 표준화할 수 있는 데이터를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일부 대증적인 치료에서는 그런 것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개인차가 대단히 큰 중병의 경우 그런 일반적인 잣대, 곧 ‘표준 처방’ 같은 것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정 질환에 어떤 약재가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객관적인 자료들 제시하여 공인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한의사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단히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한의학이 양의학의 길을 걸어야, 다시 말해서 양의학이 하는 방식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그 존재 의의를 인정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으로 빠질 우려가 짙다.) 그것보다는 한방과 양방이 자연과 인간의 몸을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랄까 세계관에서 큰 차이가 있음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민의 몸 상태는 대단히 심각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허약해진 때는 없었고, 그래서 민족적인 위기 상태라는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어도 생활의 질이랄까 몸의 상태는 취약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염려한 것일 게다. 이런 상황에서, 열이 나면 왜 열이 나게 되었는지, 그것은 몸이 보내는 어떤 신호인지 등을 섬세하게 따지려 하지 않고 그저 열을 내리는 데만 열중하고, 어디가 아프면 우선 통증을 가라앉히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대증치료만으로는 곤란하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페친인 한의사 주서영 님이 <환자를 의사로 만들기>에서 말하듯이, "궁극의 만병통치약은 건전하고 행복한 삶과 올바른 섭생에 기초한 내 몸에 내재한 '복원력'이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연스레 돕는 것이 의료의 최선"이라는 점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국가 의료 혹은 인민 보건의 차원에서 보다 근본적인 접근과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본다. 지금처럼 나가서는 답이 없지 않을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의학과 한방을 근거 없이 사갈시하는 풍조는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종의 자학 같은 처사이기 때문이다.


덧. 이처럼 한의학에 대한 지식도 없는 사람이 거칠기 그지없는 주장을 편 이유는 지금 여기 소위 불치와 난치의 고통에 처해 있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진지하게 접근해야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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