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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01. 2024

한의학, 관견 <2>


특발성(特發性). 이 이상한 말은 ‘질병이 나타나는 원인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성질’을 뜻한다. 한마디로 발병의 이유를 잘 모를 때 쓰는 말이다. 예를 들어 폐섬유증에서 특발성이 아닌 경우는 그 발병의 요인을 찾아 제거하는 것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특정 화학물질이나 약물로 인해 일어났다면, 우선 그런 환경으로부터 환자를 분리하는 것이 첫 처방이 되는 것이다. 반면 발병 요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폐섬유증은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치유할 수 없고, 다만 섬유화의 진행을 늦추는 것만이 유일한 처방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말이다.


장내 미생물은 폐 등 장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 S대병원 의사 L씨는 “장내 미생물 환경은 장 건강에 그치지 않고 폐, 뇌 등 여러 장기와 밀접하게 커뮤니케이션한다.”라고 했다. 한방에서는 폐섬유증 치료의 일환으로 장 상태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한다.(이것은 각을 다투는 위급한 중환자한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치료하는 데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것은 양방에서 섬유화의 진행을 늦추는 데 집중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다. 양방에서는 다른 조치 없이 ‘항섬유화제’라고 하는 두 종류의 약물, 곧 피르페니돈과 닌테다닙을 곧바로 처방한다. 다른 약물이 없는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약물들은 효과면에서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도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하기로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양방을 폄하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양방에서도 다방면으로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양방에서는 발병의 원인 규명보다는 그 병이 어떠한 기재로 진행되는지를 밝히는 데 더욱 치중한다. 폐섬유증 환자의 폐에서 콜라겐이 과도하게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밝혀진 결론이다. 그러니 이런 맥락에서 콜라겐 생성에 영향을 주는 단백질의 작용을 감소시키는 약물 개발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전망이 밝은 것으로 보인다.


양방과 한방은 폐섬유증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시각이랄까 관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나름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더 나은 방향인지는 속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각각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나아가되, 상대를 근거 없이 폄하거나 사갈시하는 ‘작태’를 당장 멈추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양방과 한방의 소위 ‘협진’ 같은 것이 그저 입바른 소리로 그치지 않고, 그 의미 있는 출발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2001년부터 모든 의과대학에서 한방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8년 조사(Moschik 등, 2012)에 의하면 전체 의사 약 30만 명 중 83.5%가 한약을 실제 처방하고 있고 과별로 보면 내과(88.8%), 산부인과(86.7%), 외과(84.7%)에서 사용비율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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