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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14. 2024

음식 연구자


오늘은 우리 그림과 술에 관한 글을 좀 읽어 보자 하고, 어느 책을 펼쳐 보았다. 마침 두견주(杜鵑酒)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어 해당 부분을 먼저 보았다. 식품을 전공하는 교수인 저자가 제시한 그림은 김준근의 「답청가서 노는 모양」이었는데, 거기에 다섯 명이 갓과 도포를 벗고 술을 마시고 있다. 저자는 그들이 마시는 술이 두견주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답청놀이를 하러 간 것이니 두견주를 먹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그림이 화전놀이를 묘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 그림에서 보듯이 화전놀이가 여성들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남성들도 즐겼다는 주장까지 한다. 그 결정적인 근거로 화전놀이를 노래했다는 임제(林悌, 1549~1587)의 시가 홍만종의 『순오지(旬五志)』에 실려 있다는 점을 들었다.


"작은 시냇가에 돌 고여 솥뚜껑 걸고

기름 두르고 쌀가루 얹어 참꽃[두견화(杜鵑花)]을 지졌네

젓가락 집어 맛을 보니 향기가 입에 가득

한 해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네"


그리고 나서 곧 같은 페이지에서 김삿갓도 “화전하는 광경을 시로 남겼다”고 하면서 주장의 근거를 보강했다. 김삿갓의 시라고 한 시는 이렇다. “작은 시냇가에서 솥뚜껑을 돌에다 받쳐 / 흰 찹쌀가루와 참기름으로 진달래꽃을 지져 / 쌍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니 향기가 입에 가득하고 / 일 년 봄빛이 뱃속에 전해지누나”


원문을 제시하지 않아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저 두 시는 같은 시로 보인다. 만일 임제가 지었다면, 그 시를 후대에 김삿갓이 지은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런데 저 시를 임제가 지은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이 「자화(煮花)」라는 시를 남겼기 때문이다.


鼎冠撑石小溪邊

白粉淸油煮杜鵑

雙竹引來香滿口

一年春意腹中傳


위에서 본 바로 그 시다. 정리하면 이렇다.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이 병으로 누워 지내다가 옛날에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하여 『순오지(旬五志)』를 남겼는데, 거기에 양응정의 시를 실으면서 그것을 임제의 시로 잘못 적어 올렸고, 한참 후에 사람들이 그 시를 김삿갓의 시라고 다시 잘못 여겼던 것이다.


요컨대 원문과 그 소종래를 저자는 확인하지 않고 인터넷 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왔던 것이다. 전문지식을 대중교양서를 표방해 서술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그렇다고 근거 없는 이야기를 손쉽게 늘어놓아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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