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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19. 2024

“셕은 비”


<농가월령가> 7월령에 “셕은 비 지나가고 오동잎 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하늘에는 성긴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가 생각난다. 1927년 발표할 때는 “석근 별”이라 했다가, 1946년 시집으로 묶으면서 “성근 별”이라 고쳤다.


이들 두고 현대시 전공자들이 이렇게 논쟁했다. “듬성듬성한 또는 뒤섞여 있는”(김학동), “사이가 뜬 혹은 섞인”(유종호), “크고 작은 별들이 섞인 모습”(민병기), “크고 작은 별들이 얼크러져 있는 모습”(김재홍), “저녁의 어스레한 때의 별”(박경수). 심지어 권영민은 “‘석근’은 ‘성긴’의 오식(誤植)”이라고까지 ‘논구’했다.


그러나 ‘성긴’을 예전에는 ‘석근’이라고도 썼음을, 그러니 현대시 전공자들의 저 ‘해석’들이 다 쓸데 없는 일이었음을 <농가월령가>가 말해주고 있다. 그 이전에 이덕무는 박제가의 시, 특히 “성긴 별 모옥을 비추고(疏星灑茅屋) / 밝은 달 시내를 비추네(明月破溪煙)”라는 구절을 고평한 바 있다.


<농가월령가>에서 “셕은 비”라 한 것은 ‘소우(疏雨)’를 말한다. 두보가 “幕府秋風日夜清, 澹雲疏雨過高城”라고 했을 때의 그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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