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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21. 2024

저녁 단상 둘


1. 기고만장(氣高萬丈)


나는 그 동안 우리 나라 위키백과에 대해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직접 작성해 올리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지금 새삼 훑어 보니 대개 연예인 정보가 상당수 그리고 불필요하게 상세히 올라와 있다. 아직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수준에는 대단히 함량미달이다. 그쪽의 경우, 서술은 물론이고 우선 참고문헌이 대단하다.


우리 나라의 이른바 인터넷에 떠도는 '컨텐트(츠)'의 수준은 대개 쓰레기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이 아무런 수정도 없이 그저 무한 반복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간혹 위키백과에서 긍정적인 기미가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고만장' 같은 단어는 일반 국어사전의 설명보다 나아 보인다. "기운(氣運)이 만장이나 뻗치었다는 뜻으로,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나거나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을 의미하는 말이다. 지금은 잘 나가니까, 혹은 자기가 잘 나가는 줄 알고 눈에 뵈는 것이 없다는 의미로 더 많이 쓰는 듯하다."


그 용례를 검색해 보니, 이자겸을 설명한 부분에 적절한 것이 보인다.


"이자겸의 아들들과 친척들도 조정의 요직을 차지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등 횡포를 부렸으며, 특히 출가한 막내아들인 승려 의장(義莊)은 교종(敎宗) 법계(法階) 중 다섯 번째 자리인 수좌(首座)에 임명되어 종교계에도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한편 다른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될 경우 외척 세력이 자신에게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하여 1124년에는 셋째 딸을, 이듬해에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비로 삼게 했는데,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조조가 후한 헌제에게 딸을 시집보낸 것에 빗대기도 했다.[ 《동사강목》 8권 1125년]


고려사는 당시 그들이 이 같은 재산 축적을 '그 세력이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뇌물이 공공연히 오가며 사방에서 음식 선물 등이 들어와 항상 수만 근의 고기가 썩어났다. 백성들의 토지를 강탈하고 자기 집 종들을 앞세워 남의 수레를 약탈해다가 자신의 물자를 수송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수레를 때려부수고 우마를 끌고 다니는 바람에 모든 길이 소요스러웠다'고 표현하고 있다.[ 김당택, 《우리 한국사 :정치사중심의 새로운 한국통사》(푸른역사, 2006) P.135] 어사대 등의 언관들은 이자겸의 월권행위를 비판했고 인종은 이자겸의 제거를 결심한다."


이상 인용문은 모두 위키백과에 있는 것들이다. 후자의 경우 참고문헌 목록도 충실하다. 적절한 설명이고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한다. 공부해 볼 만하다.


2.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위키백과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려고 '화무십일홍'을 쳐보니 없다. 이건 내가 좀 올려봐야 겠다. '화무십일홍'은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뜻으로, 힘이나 세력 따위가 한번 성하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옛 대중가요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 늙어지면은 못노나니 / 화무는 십일홍이요 /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 화란춘성 만화방창 /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 차차차"


그런데 "화무는 십일홍이요"라니? 직역하면 꽃이 없는데 열흘이 붉다? 이것은 이른바 띄어읽기를 잘못한 것이다. 예전에 어느 고상한 한학자가 옛말을 이렇게 잘못 쓰니 참 문제다, 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걱정하지 마시라. 조금만 신경 쓰면 누구나 다 알아 듣는다. 예전에 <춘향가>를 결말이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선사람이라면 말이다. 리듬에 맞춰 그렇게 부른 것을 모르고, 훈장질하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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