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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n 04. 2024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가 추구하는 것은 도(道)이지 그릇이 아니다. 사람이 먹는 것이 밥이지 그릇이 아니듯이. 그런데 그릇에는 각각의 용도가 있다. 지식인의 병폐는 그러한 작은 기능들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릇을 추구했기 때문에 스스로 그릇이 되고 만 것이다.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군자불기'는 막스 베버의 언급으로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베버가 생각하기에 동양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이 말의 여파 때문이다. 사농공상의 위계에 따라 상인이나 공업인 등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동양에서 자본주의가 성장, 발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는 수긍할 만한 주장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 정확히는 미국 주요 대학에서 유교를 연구하는 중국 출신 학자들인 뚜웨이밍, 마우쫑산 등 이른바 '현대 신유가(新儒家)'의 한국 (유학생) 제자들은 막스 베버의 이 주장을 비판한다. 오히려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폴 등 이른바 사룡(四龍)이 서구보다 자본주의를 더욱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현실을 보라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거기에는 유교적 질서와 덕목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교적이라 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충효와 같은 상하 관계의 수직적 도덕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사와 공장 내에서 유교의 가족을 발견해 낸다. 사용자는 어버이, 고용자는 자식이라는 끈끈한 정이 이들 나라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자들이 최종적으로 완성시킨 것이 바로 소위 '유교자본주의'다. 이 한심한 조어는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귀여운 것이 크게 사단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대우가족"!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러나 실상은 어땠는가? 2001년 이른바 대우사태에서 보듯이, 겉으로는 가족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그 가족을 개 패 틋 짓밟지 않았던가. 노조를 인정치 않고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는 삼성의 'think family'도 결코 다르지 않다. 유교를 팔아먹는, 철없는 혹은 뻔뻔하고도 비루한 학자들이 자본의 나팔수로 활동하는 모습은 대개 이렇다.


참고로 '한국의 유학생 제자'들이란 박정희 지배 당시 장관을 지냈던 독재 부역자들의 자제분들을 말한다. 그들은 어려서 이 땅을 떠나 미국에 유학하면서 소위 '조국'의 현실에 대해 너무나도 몰라 낭만적으로 생각한 철부지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와 유명대학의 교수를 지내다가 고위관직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shit!


둘째, 군자는 일정하게 제한된 그릇에 담아둘 수 없다는 이 말은, 역으로 자기 분과 전공에 빠져 그밖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인 이른바 '앙상한 전문가'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리링(李零)은 그런 편협하고 앙상한 전문가 지식인 집단을 '장애인협회'라고 부른다.(장애인 폄하가 아님을 양지하시기를....) "지성인은 아마츄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 "교양이 모든 것의 출발"이라 역설한 재일진보학자 서경식의 발언과 같은 맥락의 말이다. 특히,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교양이란 한마디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서선생의 지적은, 일용할 삶과 현실 세계의 동향에 둔감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는 정문일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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