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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n 04. 2024

워리


우리 어려서 개를 부를 때 했던 말이다. '워리 워리~'. 무슨 외국어인가 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개를 그렇게 불렀다. 김삿갓의 시라고 알려진 시에 그것이 보인다.


하늘은 길어서 가도가도 잡을 수 없고(天長去無執) /

꽃은 시들어 나비도 오지 않네(花老蝶不來) /

국화는 찬 모래밭에서 피고(菊樹寒沙發) /

나뭇가지 그림자는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枝影半從池) /

가난한 선비 강가 정자를  지나다가(江亭貧士過) /

대취해서 소나무 아래 대자로 누웠네(大醉伏松下) /

달 기울어 산 그림자 바뀌니(月移山影改) /

시장에서 이익 챙겨 오누나(通市求利來)


가난한 선비 김삿갓이 대취하여 세상을 저버린 풍경이 떠오르지만, 원문을 우리말로 읽어보면 뜻은 전혀 달라진다. 가난의 참상을 토로하고 있다.


천장거무집 / 화로접불래 / 국수한사발 / 지영반종지 / 강정빈사과 / 대취복송하 / 월이산영개 / 통시구리래


옛말과 방언 등이 섞여 있으니 좀 풀어봐야 한다. “거무집”은 “거미집”, “지영”은 “간장”, “대취”는 “대추”, “복송하”는 “복숭아”, “월이”는 “워리”, “산영개”는 “사냥개”, “통시”는 “변소”, “구리내”는 “구린내”.... 그렇다면 이렇겠다.


천장 거미집

(화로 접불래)

국수 한 사발

(강정 빈 사과)

대추 복숭아

워리 사냥개

변소 구린내


바로 '워리 사냥개'에서 '워리'가 개 부르는 소리임을 알겠다. 그런데 "화로 접불래""강정 빈 사과"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접불'을 '곁불'이라고 풀이하는 모양인데,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정말 그런지는 자신이 없다. 그리고 '속 빈 강정'은 들어봤어도, '빈 사과'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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