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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n 05. 2024

내가 좋아하는 바를 따른다

종오소호(從吾所好)


자신의 서재를 곤지재(困知齋)라 하고 자호를 간송(澗松)이라 한 조임도(趙任道, 1585~1664)의 〈자전(自傳)〉은 고려 후기 최해(崔瀣, 1287~1340)의 〈예산은자전(猊山隱者傳)〉이나 조선 전기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지은  〈남염부주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세상과의 불화를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소탈하고 우활하며 뻣뻣하고 졸렬하여 뜻을 같이 하는 이가 드물고 마음에 합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일찌감치 문학을 업으로 삼았으나 명성을 이루지 못했다......술을 좋아하지만 주량은 아주 적어서, 서너 잔이면 금방 대취하여 흥에 겨워 천진한 본성을 드러내서는 스스로 노래를 지어 마음속으로 읊고는 했다.....그는 세간의 흐름에 따라 숙였다가 올려보고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식의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권세가에게 빌붙고 아첨하며 뒤얽히고 간악하게 구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우뚝하게 스스로의 뜻을 지켰지, 세상과 구차하게 영합하려는 일에는 마음을 완전히 끊었다. 남에 대해서는 미리 계산하지도 않고 억측하지도 않았으나, 상대가 거짓됨을 한 번 깨닫게 되면 일생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심경호 선생이 “소탈하고 우활하며 뻣뻣하고 졸렬하다”고 옮긴 원문은 “소우항졸(疏迂伉拙)”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되새겨 볼 만하다.


조임도는 〈자전〉 끝에 이런 찬시(贊詩)를 남겼다.


재주는 성글고도 짧고 / 才疏而短

성격은 고집스럽고도 미련하다 / 性執而癡

세상 나가서는 절뚝였으나 / 出世則蹇

산에서는 바른 도리 따랐네 / 在山則頤

숲과 샘은 금하는 이 없고 / 林泉無禁

물고기 새와는 약속했었지 / 魚鳥有契

내 좋아하는 바를 따라 / 從吾所好

한 세상 마치련다 / 聊以卒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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