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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n 09. 2024

단오


'단(端)'은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오(五), 곧 다섯을 뜻하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라는 뜻이 된다. 5월 초닷새는 중오(重五), 곧 양(陽)의 수 5가 중복되어 일 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다.


연전 유네스코가 강릉단오제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자, 중국이 ‘문화 약탈’이라 주장하여 논란이 인 적이 있는 단오는, 지금은 유명무실해져 버렸지만, 조선 시대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였다. (오늘날에는 설날과 추석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나머지를 발렌타인데이와 크리스마스가 대신해 버렸다.)


궁중에서는 신하들에게 부채와 얼음, 그리고 재앙을 물리치는 부적을 내려주었다. 남녀 어린아이들은 창포 뿌리를 깎아 비녀를 만들어 꽂고, 그 달인 물로 머리를 감았으며, 남정네들은 남산 기슭인 왜장(倭場)이나 북악(北岳)의 신무문(神武門) 등지에 모여 성대하게 씨름판을 벌였다.


조선 시대 최대 세시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저자 홍석모(洪錫謨, 1781~ 1857)가 서울의 세시와 풍속을 한시로 읊은 『도하세시기속시(都下歲時紀俗詩)』에서는 단오를 세 차례 노래했다. 하나씩 살펴 보도록 하자.


(1)

오월 초닷새는 천중가절이라 / 天中午節履端初

자신궁 대문에 연상첩 걸리네 / 門帖延祥紫宸宮

색실로 꽃 만들어 애호를 묶고 / 彩縷裁花纏艾虎

귀신 쫓는 주사로 도부를 찍네 / 朱砂?鬼印桃符


 「단오부적(端午帖)」이란 시다. 무슨 말인지 암호만 같다. 이 시가 19세기 중엽 쯤 지어진 것이니, 길어야 160년 전의 일인데, 우리는 까마득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궁’은 임금이 거하던 정전이다. ‘연상첩’은 종이에 쓴 ‘연상시’를 주련(柱聯)처럼 붙인 것을 말한다. ‘연상시’는 글자 그대로 ‘상서로움을 연장하는 시’라는 뜻으로, 명절에 신하가 임금을 기려 올린다. ‘애호’는 쑥의 줄기를 잘라 호랑이 모양을 만들어서 머리에 꽂는 장식이다. 쑥의 살균력과 호랑이의 벽사력 덕분으로 잡귀의 침범으로 여겼던 전염병이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속신으로, 이는 물론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 ‘주사’는 부적을 만드는 데 쓰이는 붉은 물감으로 역시 벽사의 의미를 지닌다. ‘도부’는 명절날 아침에 마귀를 쫓기 위해 문짝에 붙이던, 복숭아나무 조각으로 만든 부적을 말한다. 거기에 상서로운 글을 적어 넣는데, 역시 중국의 문화다.


지금과 달리, 그것이 중국에서 온 것이냐 아니냐는, 지역 전체 문화를 공동으로 일궈낸다는 생각이 지배한 중세 사회에서는 거의 따질 수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단옷날 광범위하게 벽사의식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문 위와 천정 사이 상인방(上引枋)에 붙인 단오부적의 내용은 대개 이렇다. “갑작(甲作)은 흉(凶)을 먹고, 필위(佛胃)는 호(虎)를 먹고, 웅백(雄伯)은 매(魅)를 먹고, 등간(騰簡)은 불상(不祥)을 먹고, 남제(攬諸)는 구(咎)를 먹고 백기(伯奇)는 몽(夢)을 먹고, 강량(强梁)과 조명(粗明)은 걸사(傑死)와 기생(寄生)을 함께 먹고, 위수(委隨)는 관(觀)을 먹고, 착단(錯斷)은 거(巨)를 먹고, 궁기(窮奇)와 등근(騰根)은 함께 고(蠱)를 먹는다. 무릇 이 열두 신으로 하여금 사악하고 흉악한 것들을 쫓아내고, 네 몸뚱이를 위협하며, 네 등뼈 마디를 꺾고, 네 살과 살갗을 갈라내며, 네 폐와 장을 뽑아내게 할 것이다. 서둘러 달아나지 않고 뒤처지는 놈이 있으면 열두 신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푸닥거리는 『성경』 「로마서」에 나오는 유월절(逾越節) 풍습과 흡사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날 밤 여호와가 이집트의 각 집 장남을 죽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여 그 표지가 있는 집은 그냥 지나쳤다는 데서 유래한 명절이다. 유월절의 피와 단오부적을 찍는 주사는 그 색과 가능이 같다. 놀라운 것은 사악한 것들이 저리도 구체적이며 다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모름지기 매사 조심할 일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겠는가.


(2)

  상자에 담아 대궐로 올려진 부채 / 函擎貼扇獻天門

  교화 입은 어진 바람 절하고 받네 / 化被仁風拜賜恩

  외각선 삼대선은 절묘도 하지 / 外角三臺多巧制

  남번은 연례대로 조신에게 선사하네 / 南藩年例問朝紳


「단오부채(端午扇)」라는 제목의 이 시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단오를 맞아 임금이 신하들에게 고급 부채를 하사하는 풍습을 노래했다. 부채의 종류는 공작선(孔雀扇)·파초선(芭蕉扇)·태극선(太極扇)·연엽선(蓮葉扇)·오색선(五色扇)·진주선(眞珠扇)·송선(松扇)·세미선(細尾扇)·승두선(僧頭扇)·사두선(蛇頭扇)·어두선(魚頭扇)·합죽선(合竹扇)·반죽선(斑竹扇)·내각선(內角扇)·이대선(二臺扇)·죽절선(竹節扇)·단목선(丹木扇)·채각선(彩角扇)·소각선(素角扇)·광변선(廣邊扇)·협변선(狹邊扇)·유환선(有環扇)·무환선(無環扇) 등 실로 다양했다. 여기서는 특히 외각선과 삼대선을 언급했는데, 각각 변죽의 바깥에 뿔을 사용하고, 변죽을 뿔대나무 등으로 세 곳에 붙인 부채로 귀하고 비싼 부채다. ‘남번’은 남쪽 지방의 관찰사나 병사(兵使) 혹은 수사(水使)를 가리키는데, 이들이 각 지방에서 부채를 만들어 중앙의 관리들에게 상납했다. 왕조 내내 백성들을 괴롭히는 낭비라고 ‘어진 신하’들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중국 사신이 겨울에도 부채를 든다고 의아해 할 정도로, 부채는 조선 양반의 필수품이었다. 양반은 집에 있을 때 부채를 부치지만, 문을 나서면 부치지 않았다. 경박해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다른 노래는 그렇다 치고 양반이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이 민요였던 것과 마찬가지다. 양반 체면에 “천아안 삼~거리 흐응~” 해서야 되겠는가.


  검박(儉朴)을 생활 모토로 삼은 양반들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부채의 사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양반의 사치는 별도의 장을 할애해 논해야 할 판이다. 부채가 우리에게 남겨준 문화의 하나로, 부채에 그린 그림과 글씨를 들 수 있겠다. 『동국세시기』에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위시해 “버들개지, 복숭아꽃, 연꽃, 나비, 은붕어, 해오라기” 등을 그려 넣는다고 했다. 글씨를 써 넣기도 했는데, ‘물가 대나무 숲에서 유유히 살아가리(水竹悠居)’, ‘강과 산의 명승지 유람하네(江山勝遊)’, ‘물가 숲에서 여름을 보내리(水林消夏)’, ‘구름 그림자 주렴에 가득하니 가을바람 시원하다(雲影滿簾秋風冷)’, ‘걸린 데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 등의 구절이 그것이다.


올 여름에는 비싸지는 않아도 멋들어진 우리 부채가 좀 더 널리 쓰였으면 좋겠다.


(3)

설빔과도 같은 아이들 단오빔 / 端午兒粧似歲粧

난탕에 세수하고 창포뿌리 비녀 꽂네 / 蘭湯?洗?簪菖

푸르고 붉게 꾸며 어찌 그리 좋은지 / 靑紅盛飾何斑爛

바람도 없는데 갈옷에선 향내가 솔솔 / 細葛無風自動香


  「단오장(端午粧)」이란 시다. 단오장이란, 설빔처럼 단옷날 차려입는 옷을 말한다. 이 시는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이에 대해서는 조풍연의 증언으로 대신한다. “처녀들에게는 집에서 어른들이 창포로 머리를 감게 해주고 귀밑머리를 딴 그 귀틈에 창포뿌리를 주사(朱砂)로 빨갛게 물들인 것을 양쪽에 꽂아 주는 풍습이 있었다. ‘머리가 창포처럼 자라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이날은 온통 부녀자들이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것이 성황을 이뤘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창포장수 울고 간다’의 그 창포장수가 전날부터 단옷날 새벽까지 서울 시내에 쫙 깔려 있었다.”(서울잡학사전)


단오빔 하면 뭐니뭐니해도 <춘향전>이 생각난다. 잘 차려 입은 이몽룡과 춘향이 만난 것도 단옷날 그네 터에서였다.


  “이때 이몽룡은 녹음방초 우거진 봄을 맞아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를 노니는데, 마침 이도령은 견우와 직녀가 건넜다는 광한루 앞 오작교를 보고는 시흥(詩興)이 절로 돋는구나.


고명한 오작의 배에 / 高明烏鵲船

광한루 옥섬돌 고운 누정이네 / 廣寒玉階樓

묻노니 천상의 직녀는 누구인가 / 借問天上誰織女

흥하는 오늘은 내가 견우일세 / 至興今日我牽牛


  이몽룡은 눈을 지긋이 감고 시를 한 수 읊고 나니 어느새 왕나비는 향기를 찾아 분주하고, 시절은 오월 단오일로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라 땅에 있는 양기 대지에 솟는구나. 이때 시서(詩書)와 음률로 능통한 춘향이가 상단이를 데리고, 그네를 타면서 홑단치마 훨훨 벗어 놓고 하얀 버선발로 앞뒤로 구르니, 세류(細柳) 같은 고운 몸매 뒤태라도 볼라치면 이몽룡 정신없네.”


다음 시는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지은 그네노래[추천곡]의 일부이다. 달콤한 사랑의 향기가 물씬 풍겨온다.


새하얀 모시옷에 진분홍 허리띠 / 처자들 손잡고 겨루는 그네뛰기 / 방죽 가 백마는 어느 댁 도령 탔나 / 채찍을 빗겨 잡고 서성이고 있구나 / 발그래한 두 뺨에 땀방울 송글송글 / 반공중에 떨어지는 아양끼 어린 웃음소리 / 나긋한 손길로 그네 줄 고쳐 잡아 / 가느다란 허리는 산들바람 못이기네 / 구름 같은 쪽진 머리 금봉차(金鳳) 떨어지니 / 저 총각 주워 들고 싱글벙글 자랑하네 / 그 처자 수줍어 살짝 묻는 말 ‘도련님 사시는 곳 이디인가요?’ / ‘수양버들 숲가, 주렴 드리운 거기랍니다.’(임형택 역)


이번 단오에는 이 땅의 인민들, 모처럼 양기 듬뿍 받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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