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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n 11. 2024

호구(虎口)


사전을 찾아보니, ‘호구’의 뜻은 다양하다.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제일 많이 쓰이지만,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지경이나 경우를 이르는 말”로도 쓰이고, 바둑용어이기도 하다. 즉 “석 점의 같은 색 돌로 둘러싸이고 한쪽만 트인 눈의 자리를 이르는 말”인 것이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서 약간 위쪽 손등 부위에 있는 합곡혈(合谷穴)을 호구라고 하는 모양이다. 거기도 잡히면 거의 죽음이다.


한편 《삼국지》에 "양입호군(羊入虎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양이 호랑이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호랑이 입[虎口]"처럼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였음”을 나타내도 하고, “아무리 용감한 양이라도 호랑이 무리 속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으니 이것은 만용”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흔히들 쓰는 ‘호구 잡다’, ‘호구 잡히다’는 아마도 바둑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 어느 칼럼을 보니 그럴듯하다. “원래 호랑이의 입안에 들었다는 것은 죽기 직전에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말한다. 호랑이 입이 가진 이러한 속성 때문에 바둑에서는 호구가 바둑 석 점이 이미 포위하고 있는 형국을 가리키는데, 그 속에 바둑돌을 놓으면 영락없이 먹히고 만다. 그런데도 호구 안에 돌을 디밀어 넣는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 어리석음을 이용해서 이익을 챙기는 것을 ‘호구 잡다’라고 하고, 손해를 입는 것을 ‘호구 잡히다’라고 하는데, 조금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다른 어떤 말보다 더 적절한 설명이 된다. 바둑을 통한 ‘호구’에 대한 설명은 ‘호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성을 보여준다. 바둑에서 호구에 돌을 두는 이유는 자신의 수만 생각하고, 자신의 수는 다 보이도록 하면서 상대의 수는 전혀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 좋은 일은 다 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반대로 상대방의 수를 분석하고, 예측 불허의 수를 두면 호랑이의 입에 들었어도 이익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저 설명이 지나치게 ‘이익’을 중심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리석게도 호구 잡히는 사람보다 호구 잡는 영악한 사람이 더 문제 있어 보인다. 이 세상이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이익을 챙기는 것을 최우선의 숙제로 삼는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호구를 잡고자 하는 건 각박하고 야박해 보이는 것이다. 물론 호구를 잡히는 건 자업자득일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호구를 잡는 자들은 대개 호구를 잡히는 자를 무시하고 우습게 알며 나아가서 천대하기까지 한다. 소위 ‘갑질(Gapjil)’을 하는 것들은 대개 호구를 짓밟는 것을 취미이자 특기로 삼고 산다. 그런데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겉으로는 꿀맛같이 절친한 척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해할 생각을 하거나, 돌아서서 헐뜯는 짓을 일삼은 구밀복검의 분신들 역시 상대를 호구로 보는 장기를 장착하고 있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마음속에는 해칠 마음을 품고 있는 ‘소리장도(笑裏藏刀)’들,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한다!


웃음 뒤에 칼을 감추고 나는

계면조 뒤에 핏발 선 눈을 감추고 나는

비겁하게도

비겁하게도

사랑을 말하네

역수(易水)를 건너던 자객쯤이나 되나

비장의 이 허장성세

칼은 이미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라네

있는지 없는지 다 잊었다네


김사인의 <소리장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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