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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n 13. 2024

가난


서정주는 「무등을 보며」에서 가난은 “한낱 남루(藍樓)에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무등(無等) 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藍樓)에 지내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럼히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1954)     


길게 말할 것 없이, 이것은 조선조 양반들이 줄곧 취해온 ‘안빈낙도(安貧樂道)’의 50년대식 변주이다. 가난함을 편안히 여겨 도를 즐긴다는 오랜 포우즈! 내가 보기에 그것을 산문으로 풀이한 것 중의 최고는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인 것 같다. 내 중학 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린 저 아름다운,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니 “가난했지만 가슴 속에는 형언 못할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느니 하는 말들은 나를 너절하고도 천박한 놈으로 마구 몰아세웠었다. 조선시대 저 ‘안빈낙도’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것이 「흥부가」의 ‘가난타령’, 곧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의 가난이여”인데, ‘안빈낙도’와 대비시켜 이 진술을 하찮은 불평불만으로 치부하게 되면, 가난은 더욱 더 부끄러운 것이 되고 만다.     


서정주의 저 오랜 포우즈를 깬 것은, 가난은 게으른 자의 훈장이라고 떠들던 저 암울했던 70년대를 뚫고 나온 정희성이다.


(정희성)

돌을 손에 쥔다

고독하다는 건 단단하다는 것

법보다 굳고

혁명보다 차거운

돌을 손에 쥐고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불과하다는

시를 보며 돌을 쥔다

배고프지, 내 사람아

어서 돌을 쥐어라

입술을 깨물며

손에 돌을 쥐고

청청한 하늘을 보며 내 사람아

돌밖에 쥘 것이 없어

돌을 손에 쥔다

(1975)     


그런데 지금, 화폐가 모든 것을 제압하고 있는 오늘날은 어떤가? 가난은 지울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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