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Jun 18. 2024

허실생백(虛室生白)


의무감에 어느 논문(?)을 읽고 있자니, 정말 할 말이 없다. 알맹이 없이 겉만 번드르르한 말의 성찬이다. 외화내빈(外華內貧) 그 자체다.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허백(虛白)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성찰(省察)”


허백(虛白)”이라... 흔히 쓰는 말은 아니다. 사전에서는 대개 “마음이 깨끗하고 욕심이 없음” 혹은 “희고 깨끗함”이라고 풀이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성현(成俔, 1439~1504)이 “허백당(虛白堂)”이라는 호를 가졌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이 말의 출전은 《장자(莊子)》의 “허실생백(虛室生白)”이다. 공자가 안회에게 한 말에 나온다.


“허실(虛室)”은 “빈방”을, “생백(生白)”은 “빛이 남”을 의미한다. “욕심이 없는 텅 빈 마음에서 저절로 깨끗한 마음이 생긴다”는 뜻인 것 같다.


원문은 이렇다. "첨피결자(瞻彼闋者), 허실생백(虛室生白), 길상지지(吉祥止止). 부차부지(夫且不止), 시지위좌치(是之謂坐馳)."


대개 이런 뜻이다.


“저 빈곳을 보라. 빈 방이지만 햇빛이 비쳐 흰 빛을 만들고 있다. 그쳐서 고요하게 비어있는 곳에 축복이 머무는 법. 마음이 고요하게 비어있지 못하는 것을 좌치라 한다.”


“좌치(坐馳)”는 몸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만 이리저리 치닫는다는 말이다.


다시 “허백(虛白)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성찰(省察)” 운운을 살펴 보자. 아무리 봐도 역시 좋은 말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허백(虛白)”과 “성찰(省察)”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허백”은 앉은자리에서 고스란히 다 잊어버리다는 “좌망(坐忘)”과 마음을 모두 비운다는 “심재(心齋)”이기 때문이다. 이 말들과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핀다는  "성찰"은 맥락과 차원이 서로 다른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이율배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