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하다'는 한자로는 '靈惡하다' 혹은 '獰惡하다'로 표기한다. 앞의 것은 사람이 지나칠 만큼 영리하고 똑똑할 때, 뒤의 것은 성질이 매우 모질고 사나울 때 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나치게 영리해서 소위 잔머리를 잘 굴리거나 잔꾀에 능한 사람은 성질이 모질거나 사나운 경우가 많다. 내 경험상 거의 예외없이 그랬다.
잔머리나 잔꾀에 능한 사람은 우선 매력이 없다. 단지 매력 없는 데서 더 나아가 피곤하다. 심하게 말하면, 좀 역겹기도 하다. 그런데 그들은 대개 '과공비례(過恭非禮)'를 시전한다. 과공비례는, 지나친 공손은 예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과공은 예가 아닌가? 예란 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과공은 사람을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현실적 필요에 이용이 될 만하니까 짐짓 과공을 하는 것이다. 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 앓는 밑을 핥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지나치게 아첨함을 이르는 연옹지치(吮癰舐痔)는 그 극단적인 행태다.
그래서 그것은 비루하고 천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과공에 약발이 떨어지거나 상대의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단박에 등을 돌리거나 냉혹하게 배신을 때린다. 아무나 못하는 짓이다. 모질고 사나운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하지 못한다.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이런 점에서도 두 영악은 서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