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보호법

by 진경환

이탈리아서 100년만에 '모국어 보호법'이 재등장했다. 1923년 2월 11일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부는 이탈리아어와 이탈리아 문화를 외국의 영향으로부터 보존하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른바 '언어 교정'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후 처벌은 더욱 강력해져 1940년에는 외국어 사용에 대해 최고 6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외국어, 특히 영어와 프랑스어 사용은 반역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올해 3월 31일 집권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 소속의 파비오 람펠리 하원 부의장은 이탈리아어의 진흥과 보호를 위한 지침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8개 조항으로 구성된 법안 초안에는 공식적인 정보 전달에서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사용했을 경우, 최대 10만 유로(약 1억4천341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것은 199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발의 된 투봉법과닿아 있다. 연전에 썼던 글의 일부를 꺼내본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는 우루과이 라운드로부터 시작된 WTO 체제, 곧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대응해 자국의 고유성을 지키고자 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외국 관광객이 영어로 길을 물을 때 냉담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자국어에 강한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흔히 알고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프랑스의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싸구려 애국주의를 선전하는, 가장 ‘너절한’ 배우로 실베스터 스탤론을 지목했던 프랑스인들이 급기야 ‘람보’에게 명예 파리시민증을 헌납할 정도로, 그리고 미국 록의 홍수 속에서 샹송 쿼터제를 시행해야 할 정도로 ‘프랑스의 자존심’은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프랑스어 보호’를 주장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프랑스어 보호법’, 일명 ‘투봉법안’은 그렇게 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 법안의 내용은 ‘공개적인 자리나 공식적인 문건에서 프랑스어 이외의 말을 사용할 경우 벌금 등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프랑스 정부로서는 자국어 보호를 위해 가장 강력한 제재 장치를 동원한 셈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WTO 체제의 출범으로 곤혹스런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여러 나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우리나라 유수의 일간지 사설들이 일제히 강한 연대의 의지를 피력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이 법안은 프랑스 헌법위원회에 의해 거부되었다. ‘아무리 현실적인 이유가 충분하다 하더라도, 프랑스인 각자 하고 싶은 나라의 말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본권적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이전 글이라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음. 투봉법 제출 당시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임)


이 ‘사건’은 현실적 요청과 당위적 원칙 간의 갈등 혹은 상충의 문제를 반성케 한다.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택한 것은, 어떤 사회적 요구가 현실적으로 매우 시급한 것이라 해도, 그것 때문에 한 사회를 지탱·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약속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의 요구에 둔감한 앙상한 원칙주의자가 되자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원칙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삶이란 많은 경우 우연적인 요인에 지배받기 일쑤이다. 그러나 ‘최소한’ 어떤 원칙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현실적 요구만을 부박하게 추수하는 개인, 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집단, 현실과 원칙의 경계에서 고민하는 않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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