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적불(心儒跡佛)과 불락양변(不落兩邊)

by 진경환

'심유적불'은 ‘마음으로는 유교를 따랐지만, 겉으로 드러난 행적은 불교였다’는 말로, 김시습에 대한 율곡의 평가이다. 물론 여기에는 유학자로서의 율곡의 입장과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만일 김시습이 이 말을 들었으면 콧방귀를 뀌었을 게 분명하다.


나는 김시습이 유교와 불교 그 어디에도 전적으로 포섭되지 않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만물을 낼 때

기(氣)가 있으면 곧 이(理)도 있게 하였네.

이(理)가 있으면 곧 도(道)도 한가지이니

유교와 불교를 논해 무엇하겠나.

벌써 도가 서로 같다 말하였으니

피차를 논할 것 무엇이겠나.

이제부터는 날마다

서로 기약하여 숲과 저자를 방문하세나.

(皇天稟萬物, 有氣便有理, 有理便道同, 何論儒釋子 … 旣云道相同, 何論此與彼, 從今日復日, 相期訪林市.)


이 시는 김시습이 중으로 살면서 선비인 김진사와의 사귐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기는 하지만, 유교와 불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유교와 불교가 이치상 다르지 않다고 한 후, 그렇다면 야단스럽게 분별하여 이것이니 저것이니를 가를 것 없다고 하면서, 그 경계를 가로질러 넘나들자고 제안하고 있다. “숲과 저자를 방문하(訪林市)”자고 한 것은 ‘숲[林, 佛]’과 ‘저자[市’, 儒], 그 어느 한쪽에만 배타적으로 매달려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러한 경계를 허물자는 제안이다.


혹자는 이것이 유불의 조화 혹은 교섭 같은 것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하나, 그것은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한 마디로 불락양변(不落兩邊) 혹은 양변불락(兩邊不落)의 태도이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시의 다른 구절, 곧 “내 비록 중 옷을 입었지만 / 뜻은 그것과 다르다오(而我雖緇褐, 志則異於是)”이나 다른 시에서 “구담씨(瞿曇氏)에 집착하지도 않고 / … / 역시 우활(迂闊)한 선비도 되지 않겠다(不着瞿曇氏 … 亦不爲迂儒)”고 한 토로가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구담씨'는 부처를 말한다.


중니는 어떠한 사람이기에(仲尼亦何人) / 재재거리며 동으로 북으로 유세하였나(喃喃說東北) / 그 누가 그대의 말 들어줄 텐가(阿誰聽爾言) / 죽은 뒤 한 구덩이 메웠을 뿐인 걸(空塡一丘壑) / 모니는 또 어찌된 사람이기에( -牟尼亦何人) / 천만 마디 많은 말 떠들고 다녔나(吧吧千萬說) / 공연히 열두 불경 설법했지만(空演十二部) / 죽어서는 마른 재 되어 버렸지(死化爲枯灰) / 평생 부질없이 말 많기보다는(平生謾多事) / 차라리 일없이 사는 게 좋지(不如無事哉)


「고풍(古風)」이라는 시 중 한 수이다. 내가 보기에 이 시야말로 김시습의 내면과 실존을 적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시에서 ‘중니’는 물론 공자의 이름이고, ‘모니’는 석가모니를 말한다. 유교와 불교의 창시자들이다. 공자를 ‘중니’라 하고 석가를 ‘모니’라 하여 짝을 맞춘 후, 각각 재잘거린다는 의미의 ‘남남’, ‘파파’를 나란히 쓴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표현이었을 것이다. 김시습은 무엇을 노린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보자. 지배적인 혹은 중심적인 이념 · 가치체계라고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 냉소를 보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냉소가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주체의 지향성이 분명히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김시습이 보인 냉소의 지향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획일화에 저항하는 일종의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현실을 일종의 ‘중심 없는 심급들의 체계와 그것들 간의 갈등 관계’로 이해, 파악하자는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독단적이 되기를 거부하고 균형 잡힌 시야를 확보하여 인생의 복잡성과 가치의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이른바 최종심급으로서의 ‘단일한 중심’을 거부, 비판하려는 의식 태도 혹은 지향을 취하겠다는 표명이다.


반대물 간의 긴장으로 가득 차 있는 착잡한 현실에 직면해 그 어느 쪽에도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일단 뒤로 물러서서 대상을 관찰하는 이러한 인식 태도를 대개 ‘불락양변'이라고 한다. 이것은 유독 그의 시에서만 드러나는 성질이 아니다. 그의 자화상에서 보듯이, 김시습은 머리를 중처럼 깎았지만, 수염은 선비처럼 길렀다. 이른바 ‘삭발존염(削髮存髥)’이다. 그의 호(號)도 마찬가지다. 흔히 ‘매월당(梅月堂)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청한자(淸寒子)와 설잠(雪岑)도 많이 썼다. 앞의 것이 도가적인 것이라면 뒤의 것은 승명(僧名)이다. 어느 것 하나에 특별히 메이지 않겠다는 표명이다. 이렇게 보면 불교학계에서는 설잠만, 도교학회에서는 청한자만, 유교에서는 매월당 혹은 동봉(東峰)만 고집하는 것은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김시습은 지배적인 이념으로 행세해 온 유학과 불교 그리고 그것을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하나의’ 중심을 세워 그것을 차지하려는 모든 사유가 실체적 본질을 지시하지 않는 사회적 구성물 혹은 권력 행사의 방편일 뿐임을 주장하면서, 중심을 해체하기 위한 ‘탈주’를 시도하였다. 일종의 천재적 광기로 볼 수 있는 그의 여러 파격적 언행과 기행들은 이러한 탈중심의 기획을 그 배면에 깔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에 유행하는 들뢰지안들의 용어를 사용해 보았지만, 김시습이 보인 불락양변의 태도는 문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반어(反語, irony)이다. 반어야말로 현대문학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한다면, 김시습의 시는 이제 새롭게 읽혀져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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