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특기적성 미술강사
엄마표 영어를 공부하면서 또 다른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사회복지실습을 하면서 알게 된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회복지에는 노인복지, 아동복지도 있고 청소년 복지도 있었다. 청소년 복지에 관심이 많고 일을 하고 있던 언니는
4가지 영역으로 나눠져 있던 특기 적성 강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중에서 나는 미술특기적성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수업은 어렵지 않았다. PPT로 수업 교재가 다 만들어져 있었고 우리는 샘플 수업을 연습했고 수업에 필요한 연습용 교구들만 만들면 되었다.
2주 정도 선생님들과 팀을 꾸려서 청소년 복지 센터 한편에서 수업을 연습하고 연구했다. 초등학생이 아닌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해야 해서 실제로 수업 연습을 많이 해봤다. 앞에서 어찌 말을 해야 아이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정규 수업이 아닌 꿈을 찾아가는 특기적성 수업인데 아이들이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꿈을 찾는데 도움이 되도록 수업을 고치고 또 고쳤다.
2년 계약직이었다. 일하는 시간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유치원을 갔을 때 중간중간에 시간을 조율해서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아이들도 챙길 수 있었고 많이 힘든 일이 아니라서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페이는 일당으로 받았다. 하지만 나에게 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반에 30명 남짓 되는 청소년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나면 아이들의 파릇파릇한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에서 했던 육아와 다른 아이들. 말이 통하는 아이들을 만난다는 설렘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 번은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3학년 여자 아이들 수업을 했었다. 내 수업을 듣고 생활기록부에 한 줄 적기 위해 하는 수업이라(꿈적성수업이수) 토요일 오전에 아이들이 일부러 학교에 출석해서 하는 수업이었다. 두 번의 수업을 다른 선생님들과 번갈아가며 들어갔었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은 완전 어른이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나와서 수업을 하려면 귀찮기도 할 법하다. 하지만 여자 친구들이 너무 이뻤고 내가 하는 수업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200% 실력을 발휘해서 그림도 발표도 너무 잘해 주었다. 수시로 이미 원서를 다 쓴 아이들도 있었고 정시를 준비한다며 자기는 수능에 모든 걸 걸었다며 선생님에게 좋은 기운을 받고 싶다며 너스레를 떠는 학생도 있었다. 내 고등학교 기억이 떠오르며 아이들이 짠해 보이기도 하고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또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해서 아기 같았고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은 또 그 학교에서 최고 학년이라 어른 같아 보였다. 학교마다 분위기도 달랐고 매시간마다 여러 아이들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이년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학업에 찌든 아이들에게 내 수업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숨통이 틔였으면 했다. 제각각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지만 다들 마음 한편에 이쁜 꿈들이 자라고 있음을 배웠다. 아이들은 대부분 순수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라고 지레 겁먹고 수업을 시작했지만 열심히 했고 열정이 넘치는 아이들도 많았다. (뭐 수업 시간에 엎어져서 자는 아이도 있었지만. 이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꼭 한두 명씩은 있었다)
엄마의 12년째 이중생활을 연재해 봅니다.
대문 사진 -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