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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Sep 28. 2022

통제를 좋아하는 바보들

뭐가 맞고, 또 우선인지조차 모른다.

부모가, 주변 어른이, 친척 또는 지인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내 삶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며 단호히 대응하면서,

국가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며 일일이 통제하는 건 별 생각 없이, 심지어 받아들이는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 바로 한국인이다.

국가의 강제에는 이유가 있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는 이유가 없나?

그래서 국가가 하라는 대로는 고분고분하게 따르면서, 저들의 말은 거슬린다는 이유로 듣기를 거부하는 것인가? 선후관계를 따지면 오히려 반대가 돼야 하는 게 아닌가? 내 삶에 더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누구인데?


이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만 3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 사람들은 사실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언론은 무엇을 먼저,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그저 정쟁을 격화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는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정작 온 사회와 국민의 향방을 결정하는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는 반박조차 않고 그저 이를 받아쓰기에만 급급할 뿐.


"뭣이 중헌디?"란 영화 대사는 그렇게 따라해댔으면서, 정작 진실로 무엇이 중요한지에는 무관심한 채, 그저 언론 보도로 다뤄지는 인물을 비난하고 욕하는 데에만 재미가 들려 있는 것이 현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민낯이다. 옛 모습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리도 광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괴물과 같았던 스스로의 언행은 완전히 잊어버린 듯,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뭔가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게 "지나치게 그 문제에 골몰해 있다"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난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지나치게 빨리 잊어버렸을 뿐"이라고. 심지어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 사태를 지속시키고 있는 주체는 다름아닌 정부라는 사실을 역설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내 삶을 좌우하거나, 그 방식을 결정할 수 없다'는 당당한 자기선언은 어디로 간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현대 사회의 (정치 및 사회적) 전제가 되레 이를 뒷받침해주어야 할 국가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되 왔음을 왜 문제시하지 않는가?

분명 심각하게 다뤄져야 하는 문제임에도 그러지 않는 건,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해 다수의 무감각과 무관심이 기본값이 됐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국인은 스스로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지불했다. 그리고 내일도 동일할 것이다. '문제 없다'는, '늘 돌아가던 대로 돌아간다'는 집단적 자기기만이 계속되는 한. 이는 얼마나 배웠건, 얼마나 무지하건, 얼마나 비열하건, 재산이 많건, 지위가 높건 간에 균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다. 모두가 한국에 살아가는 한국인이니 말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 나라를, 이 나라의 사람들을 이리도 선택적이고 신경한 존재로 만들었을까? 어째서 소수의 말 몇 마디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을 이리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단 말인가? 멀쩡히 돌아가는 외부 세계와 자유로이 살아가는 외부인을 동경하면서, 왜 자기 나라에 한해서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구닥다리 사상을 꽉 붙잡고 있는가?


한국은, 한국인은 대체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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