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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Oct 02. 2022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의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언론에 보도되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선명해지는 생각이 있다.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세상은 철저히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따르고 는 것을.

'강자는 약자를 병탄(倂呑)하고 인탄(躪呑)한다'던, 여말선초 배경의 모 시대극 악역('길태미')의 대사가,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어떤 죄책감도 없이 그의 말을 실천하고 있다.


인정해야만 한다.

힘겹고 어려웠던 시절, 학교에 폭력이 난무했던 '야만의 시대'를 지나 '문명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것은

모두의 착각 내지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이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악이 커지는 만큼 법도 확대된는 사실 말이다.

법이 커진다는 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뜻이며,

인간의 진보에 대한 낙관이 위태로운 위치에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잘 생각해 보면, 고대 중국의 법가 사상은 결코 인간성에 대한 신뢰로부터 태동하지 않았다.

함무라비 법전도 마찬가지다.

법은 인간성과 대척점에 있다.


사람들은 흔히 교육 체계가 정교하고 확고하며 완전무결하다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그 생각은 틀렸다.

청소년들은, 우리가 '올바르다'고 여기는 교육이 사실은 그다지 유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호해야 할 이를 보호해주지 못함을(어쩌면 않음을), 그리하여 악용될 여지가 상당히 많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를 알기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逆)의 지행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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