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문법 나치'였던 건에 대하여
맞춤법 틀렸다고 굳이 걸고 넘어지지 말고 그냥 지나칩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능한 한 맞춤법을 맞추려 꽤나 신경을 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지부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대학 전공이 어문학인데다 글의 맥락만큼이나 글의 형식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기에 나름대로 그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치관으로 인해 나는 꽤나 오랜 시간 타인의 잘못된 언어 습관을 교정하려 들었다. 예를 들면
'나는 연필 한 자루가 있다'라는 문장을 보면 즉각 반응하여
'내게(=나에게)는 연필 한 자루가 있다' 로 교정해야 한다 말하는 식이었다.
이밖에도 '바라다(願望)'를 '바래다(褪色)'로 쓰는 걸 지적하는 건 예삿일이었고, '하루'를 '1루'로, '이틀'을 '2틀'로 쓴다거나 '에'와 '의'를 혼동하는 것도 내 주된 지적 대상이었다. '되'와 '돼'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는데, 워낙 그런 일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는 쉽지 않으니 여기까지 쓰도록 하겠다.
난 이렇게 잘못된 맞춤법을 지적하는 행위가 바람직함을 넘어 매우 옳다고 여겼다. 규범을 지키는 것은 마땅한 행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 나와 같이 틀린 어법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이름도 무서운, '문법 나치'였다.
워낙 '-충(蟲)'이란 접미사가 유행처럼 사용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문법 교정충' 정도면 이해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치'라는 말을 갖다붙이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이 올바르게 언어를 구사하면 될 것을 가지고 왜 맞는 것을 맞는다고 지적하는 이에게 저런 표현을 쓰나 싶어 기분이 영 좋지 않더라.
그런데,
'어떤 시기'를 기점으로 내 생각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난 더는 누군가의 맞춤법이 틀렸다고 해서 이를 교정하려 들지 않기로 했다. 왜냐, 그에겐 맞춤법을 준수하지 않을 자유가 있고, 이를 교정하려 드는 것은 내가 그를 가르치려 들겠다는 취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묻는 사람에게 말하고자 한다. 사람에게는 영역이란 것이 있고, 그 영역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상호 구분되어 있다. 이를 망각하고서 누군가가 그저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했을 때, 그것을 '언어 규범'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사건건 지적하는 것은 그 영역을 깨는 행동이다. 뭐, 누군가에게 그럴 자유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은 일상의 영역과 교육의 영역을 구분하는 존재로, 교육은 교육 기관을 통해 받아도 충분하다. 그러니 혹자가 인터넷 댓글란에 틀린 표현을 사용했다 해서 이를 지적하는 것은 일상의 영역과 비(非)일상적 영역을 섞는 처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사자가 교육의 영역에 스스로 들어가 가르침을 구하거나 시비 여부를 판단해 달라 요청하지 않는 이상 '굳이', '애써' 타인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려 들 필요는 없다. 문제는 적잖은 사람들이 '필요는 없더라도 하는 것에 무슨 문제냐' 식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나는 왜 이렇게 적잖은 한국인이 타인의 틀린 맞춤법을 지적하려 드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 결과 두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첫째, 이는 한국 사회 고유의 집단성을 기반으로 한 '간섭주의'에 의거한 문화적 행동이라는 것이고,
둘째,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역사-사회적 맥락상 바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정부나 사회로부터 불이익을 당해 왔기에 지나치게 바름과 정상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문법 교정 욕구 또한 그런 성향이 드러난 하나의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 사회도 어릴 때부터 '이렇게 해야 해' 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돼'와 같은 말을 많이 한다. 왜 자유롭게 두지 않고 자꾸 특정 행동을 하기를 종용하는 것일까? 이는 '동양'이라는 거시적인 틀이 그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맥락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게끔 구성되어 왔다고도 볼 수 있고, 한국과 일본이란 두 나라의 역사적 상황이 그들의 의식 구조를 굳혔거나 아예 대대적으로 변화시켜 규범을 지키는 것만이 올바른 행위라 가르치게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문법'일까? 추측컨대, 문법 지적은 개인이 다른 이의 영역에 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문이라 그런 것 같다. 한국 사회는 권위가 매우 중시되는 곳이라 개인이 다른 이의 영역에 '권위 없이' 개입하거나 간섭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만약 누군가가 타인의 영역에 개입한다면, 이는 대개 그 영역에 권위가 가미되는 경우로, '부모의 권위', '교사의 권위', '전문가의 권위', '직장 상사의 권위', '교수의 권위', '선배의 권위'와 같이 개별자를 넘어서는 뭔가가 반드시 관계 뒤에 존재하는 것이다. 권위는 한국 사회에서 '위계'로 나타나는데, 만약 둘 이상의 개인이 이런 권위나 위계로 구성되지 않은 (비교적) 평등한 관계로 조우할 경우, 사실상 서로의 행동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그런데 문법 지적은 바로 이 '전문가의 권위' 영역에 속한다. 문법 자체에는 규범성이 있는데, 이에 규범성을 부여한 것은 문법학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를 힘입어 상대방의 언어 사용을 지적하는 것이다.
만약 한국 사회에 상호 불간섭주의와 개인주의가 정착된 상태라면 누군가가 문법을 틀렸다고 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일이지 나의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의미 전달에 심각한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틀린 맞춤법을 지적하는 행위는 '맞춤법이 틀렸더라도 그 의미는 인식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결국 '표현은 틀렸으되 뜻은 통한' 상황이다. 그럼 그걸로 된 거다. 그냥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가 맞춤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왜 내가 답답해해야 하나? 그럴 거면 국어 교사나 교정교열가를 하든가, 글쓰기 강사를 하는 편이 나았을 텐데 말이다. 국어 사용과 관련된 '기관'에서 맞는 표현을 사용해달라는 권고나 캠페인은 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이 일상적 영역에서까지 이를 규제하거나 문제시하는 건 엄연히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인데, 한국 사회에는 이런 관념이 다소 부족하여 사람들이 유독 타인의 문법 준수 여부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오죽하면 정치적으로 치우쳐진 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선비'와 관련된 멸칭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다. 선비란 어떤 존재인가? 사상과 학문, 계급적 권위를 힘입어 외부 대상(세계 또는 인간)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맞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이가 아닌가? 그런 존재가 얼마나 부정적으로 비춰졌으면 이를 갖다가 타인의 '지적질'을 지적하는 의미의 용어를 만들어 냈겠느냐는 의미다.
문법 지적을 두고 개인주의니, 상호 불간섭이니 권위니 하는 다소 생뚱맞게 여겨지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것이 단지 '맞는 것을 맞는다 하는 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가 '옳음'이란 기준하에 모두를 하나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행동하려는 경향이 낳은 결과라 봐도 무방할 듯싶다. 이런 나도 틀린 맞춤법을 보면 답답해 당장이라도 고치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이를 참는 것은 결국 이를 고치는 건 그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할 몫이지 굳이 내가 개입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절대 다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모두가 알듯 누구나 국어 100점을 받을 수는 없고, 더욱이 교육이 보편화될수록 오히려 그 수준이 떨어진다는 역설적 상황만 보아도 문법을 지적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행위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국어 문법은 여러 언어 체계 가운데서도 정말 어려운 축에 속한다. 한국인이니 별 생각 없이 한국어를 쓴다지만, 국어 시간을 떠올려 보라. 이게 과연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가 맞나? 겨우 '한글' 쉽게 배울 수 있는 걸로 한국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 말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처사다. 이를 인지한다면, 그냥 그들이 맞춤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그대로 두는 마음의 여유를 발휘하는 게 좋겠고. 더 나아가 스스로가 규범적 기준에 의거하여 타인의 언행이나 사고를 강제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지 않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기억하자. 모든 사람이 교사나 교수인 건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교사든 교수든, 둘 다 아니든 간에 타인의 행위를 강제할 절대적 권한을/권위를 갖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규범 준수라는 틀에서 좀 놓아주도록 하자.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냥 좀 지나치자. 그게 서로를 위해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