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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Apr 09. 2023

'하나의 중국'과 현상 유지

최근 중화민국, 즉 대만의 전임 총통(대통령)인 마잉져우(馬英九, 표준 표기로는 '마잉주'지만 원음과의 괴리가 심해 최대한 이에 가깝게 표기함)가 국공내전 이후 이어진 양안 대치 상황에서 전현직 총통 최초로 중국 대륙에 방문한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지난 2015년에 '역사적인' 마시회(馬習會, 마잉져우 당시 총통과 시진핑 주석간에 진행된 회담)가 싱가포르에서 진행되었고, 그 후로도 대만의 주요 정당인 중국국민당 주석 및 당 고위관계자가 중국 대륙에 방문한 적은 있지만, 중화민국의 대표자 또는 역대 대표자대륙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마잉져우 전 총통 측에선 '개인 일정'이라 선을 그었지만, 중화민국에서의 그의 지위를 고려하면 단순히 개인 일정이라 치부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기에는 매우 과감하고 전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상의 묘소에 참배하겠다는 이유로 공식 방북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반면, 민주진보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은 중남미 소재 수교국 순방을 목적으로 비행길에 올랐지만, '미국-대만 관계'의 한계상 공식 방문이 아닌 경유의 형태로 미국에 들러 미 하원의장인 케빈 매카시 의원을 만났다. 이 또한 중화민국의 외교나 역사에 있어서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데, 1979년 미국-중화민국 관계가 미국-중화인민공화국 관계로 대체되면서 양국의 공식 수교 관계는 단절되었으나, 그 이후로 '대만관계법'을 통해 비공식 관계를 이어 오던 두 나라가 이번 차이 총통의 회동을 통해 사실상 공식적으로, 그것도 미국에서 첫 고위급 접촉을 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더군다나 미국 하원의장은 미국 대통령-부통령에 이은 권력 서열 3위라고 일컬어지는 바, 짧은 접견이라고는 하지만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일국의 총통 대 일국의 하원의장' 차원의 만남이었기에 세계적으로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 당연히 중국(중화인민공국) 측에선 마잉져우 전 총통의 방중에는 환영의 뜻을, 차이잉원 현 총통의 방미에는 강한 반발을 표했다.

중국 대륙에 방문한 마잉져우 전 중화민국 총통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0517#home)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원 의장과 회동하는 차이잉원 현 중화민국 총통 (https://www.mk.co.kr/news/world/10706161)

중국 입장에선 '중미 수교'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하며 합법적인 중국의 정권'임을 확인받은 상황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대만성(臺灣省)'을 점유한 불법 정권 대표자와 미국 의회의 수장이 만난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이는 중국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수교국인 미국이 '대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 측은 대만을 포위하는 군사 훈련을 전개하기로 했고, 미국은 이에 대하여 '현상 유지'를 언급하며 군사 행동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종종 언급되고는 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사실 매우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의 입장에 편향된 개념으로서, '하나의 중국 원칙' 자체만으로 이미 친중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한국과 중국은 1992년부터 공식 외교 관계가 성립되었기에 당연히 수교국인 중국의 입장에서 이를 사용할 수밖에는 없겠으나, 이 '하나의 중국'이란 개념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그래서 더욱 논쟁적인 개념이다.


'하나의 중국'의 한자는 '일개중국'인데, 이는 원래 '일개중국 각자표술(一個中國,各自表述)', 즉 '일중각표'의 구성어다. 이는 1990년대 양안 관계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으로, 1992년의 양안 국가간의 공통 인식이라는 뜻의 92 컨센서스, 92 공식(九二共識)라 불린다.

 비록 현재 중국 측에선 '각자표술'은 어딘가로 갖다 버린 채 '일개중국'만을 내세우고는 있으나, '중국은 하나이되 그 형식은 각자 알아서 한다'라는 저 일중각표는 서로의 존재를 묵인하겠다는 상징적 선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바로 위에 언급했듯 대륙의 베이징 정부에서는 오로지 하나의 중국만을 주장하고 있지만, 대만의 타이베이 정부에서는 '각자표술'에 초점을 두며, 그 '하나의 중국'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견지하고 있다(공식적이란 뜻은 말 그대로 국가 차원의 입장이라는 의미인데, 현 집권당인 민주진보당 차이 총통은 '일국양제'와 더불어 92공식 또한 전면 부정).

물론 '일중각표' 개념이 등장하기 전부터 베이징과 타이베이 정부는 각각 상대편의 존재를 '불법 정권' 취급해 왔고, 수교 조건으로 각각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할 것을 내걸었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 개념만큼은 두 국가에서 오랫동안 고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주장과는 달리 일중각표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이란 국가는 그 혈통이나 역사적 맥락에서 하나지만, 어찌되었든 현실적으로 중국을 표방하는 두 개의 국가가 병존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갈등을 피하자는 의도에서 도출된 개념이라 압도적 국력과 외교력을 지닌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는 크게 양보한 것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각표'를 버려 '일중'만이 남은 상황에서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패권 행보를 보이며 특별행정구인 홍콩의 자치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사실상 별개의 정권이자 국가인 대만에 대해서도 날로 군사-경제-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상황에서 대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왜냐, 중국의 대만에 대한 포위를 저지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이 '현상 유지' 때문이다.

현상 유지라 함은, 양안 분단 상황을 인정하여 그 이상의 정치적 변동이 없도록 하는 개념인데,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타이베이의 중화민국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도 국제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베이징 정부는 '중국'으로, 타이베이 정부는 '대만'으로 불리는 상황을 공식화하여 중국 측의 무력 도발이나 침공을 통한 강제 통일 시도를 저지하려는,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 사회와 생존을 위한 대만 측의 정치적 입장이자 중국 측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다만 이는 대만 측에도 정치-외교적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 현상 유지란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타이베이 정부에서 대만, 즉 타이완(Taiwan)을 공식적으로 국가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것도, 심지어는 공식 국호인 중화민국(ROC, Republic of China)을 내세우는 것도 사실상 금기시되는 상황이다. 비록 이것이 대만의 현 체제 존속을 위해 고안된 개념이기는 하나, 그러한 이유로 동시에 '중화민국'이란 이름도, '대만'이란 이름도 공식 석상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고 위축되는 대만의 지위를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현상 유지란 중국(여기서는 '중화민국')적 정체성을 강하게 지니는 보수 성향 정당(이른바 '범람연맹')과 대만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진보 성향 정당(이른바 '범록연맹') 모두에게 함부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방하지 못하도록 하는 암묵적이면서도 강력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중국국민당 출신으로 총통직을 수행했던 마잉져우와 민주진보당 소속의 차이잉원 총통이 각기 중국 대륙과 미국에 방문한 것은 '중화민국'이든 '대만'이든 간에 국가를 수호하려는 두 정치 세력 간의 상이한 행보라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즉 공식적 정체성인 '중국(중화민국)'을 견지하는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대만해협 건너편의 대륙 정권에 대해 포용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야만 '중국'으로서의 대표성을 주장하고 또 국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고, 비공식적 정체성이자 현상 유지의 관점에서 장려되는 정체성인 '대만'을 견지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대표적 세력인 미국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여야만 국제 사회에 참여할 공간이 확보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라 어느 측 입장을 무작정 잘못되었다 매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더군다나 민주진보당 내에도 급진파인 '대만 독립 세력'과 온건파인 현상 유지 세력이 공존하고 있고, 본래 대만독립주의자로 분류됐던 차이잉원 현 총통도 집권 이후에는 '대만'이라는 말보다도 '중화민국대만'이라는 독특하면서도 현실에 부합하는 정치 개념을 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일도양단하듯 판단하기는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양안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 없이 국민당=매국 세력, 민진당=호국 세력이란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꽤나 많은데, 사실 국가 수호의 틀을 반중이냐 친중이냐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매우 몰지각한 처사이며, 대만의 중화민국이 겪고 있는 국가 정체성 인식 문제(중국어로는 國家認同問題라 함)를 철저히 외부자적 입장에서 별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비롯된 태도이기도 하다. 한국 정치만 하더라도 소위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 북한 정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을 두고 단순히 '자유민주주의 수호 세력 vs 빨갱이 세력' 또는 '반민족/통일 세력 vs 평화(통일) 지향 세력'으로 이분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몰지각한 처사인지를 생각하면 단순히 친중 친미를 가지고 어떤 정당이 나라를 말아먹니 어쩌니 하는 것은 아무리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패권을 확대하며 매우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여 자국에 대한 국제 사회 차원의 적대감을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라 할지라도 매우 피상적이고 비본질적인 처사라는 것이다.


사실 아무리 미국에서 대만을 state, 즉 '국가'라고 칭해 봤자 대만의 국제 사회에서의 입지는 계속해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벌써 최근에만 온두라스가 단교를 선언하여 공식 수교국이 13개국으로 줄어들었는데, 아무리 서방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들 자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나라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대만 입장에서는 그리 달가운 일도, 환영할 만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타이베이'라고 불려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서다.

그런 의미에서 마잉져우 전 총통의 방중도, 차이잉원 현 총통의 방미도 대만의 지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는 없으며, 그저 정치 세력간의 정권 탈환과 유지를 목적으로 한 계산적 행보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는 것이 현실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중국은 절대 '중화인민공화국' 외의 정체성이 공식적으로 표방되고 인정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미국을 포함한 서방 사회 또한 중국-대만이란 현 양안 관계가 별 문제 없이 유지되길 바랄 뿐 결코 '두 개의 중국'이나 '일변일국('한 편에 하나의 국가'라는 뜻으로, 한 편에는 '중국'이, 다른 한 편에는 '대만'이 있다는 개념)' 상황은 용인하지 않는 바, 자국의 생존 및 활동 공간을 넓히려는 대만 내 상이한 정치 세력의 행보가 과연 얼마나 유효할지, 궁극적으로는 중화민국/대만이 국제 사회에서 공식 명칭(또는 사용되길 원하는 명칭)을 사용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질지는 심히 의문스럽다. 이것이 단지 친중으로, 또는 친미로 기운다 해서 대만 섬의 명운이 180도 바뀔 일은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만약 중국에서 실제로 대만 침공을 감행하여 아시아 지역이 전화에 휩싸일 경우, 미국과 서방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 사태에 개입할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거니와 핵무장 중인 중국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은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있어서도 사실 나토(NATO)를 필두로 무력 대응을 하면 문제는 매우 간단해진다. 하지만 말 그대로 문제가 간단해질 뿐, 그 결과는 파국일 수 있기에 무기 지원과 같은 금전적이면서도 소극적 대처로 일관하는 것인데, 미국에 대항하여 일어선 세계 2위의 강국 중국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차원의 대응을 할지 모르겠고, 진정 대만의 이익과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상의 강력하고 확실한 군사 행동을 함으로써 중국이 다시는 도발적인 태도로 나오지 못하도록 '확실히 밟을지'조차 예측하기가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 내 극우 세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축소 내지 중단하자고까지 외치고 있는데, 이상하게 푸틴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면서 시진핑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미국의 극우 세력이 혹시라도 재집권하게 될 경우, 사태는 더욱 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릴 수 있기에, 비록 미국 민주당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대만 입장에서는 사실 별 도움이 안 되는 전략적 모호성을 지한다 하더라도, 차기 미국 대선의 결과에 따라 미국-중국 관계, 중국-대만 관계, 그리고 미국-대만 관계에는 분명 달라지는 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권력 변동에 의한 관계 조정확실하다 한들 대만이 차이니스 타이페이(Chinese Taipei), 그리고 '타이완·펑후·진먼·마주 개별관세영역(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이라는 애매한 상황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대만은 중화를 버리지도, '대만'을 취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형국을 계속해서 오가게 될 텐데, 이런 상황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 한들, 중장기적으로 대만 섬의 안정적 존속에 이로움으로 작용할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차라리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같은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르나, 양안 관계는 남북 관계보다 더욱 첨예하고 특수한 상황에 해당하기에 조금의 변동이라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늘 내적 위험성을 안고 있다.

중화민국이자 대만의 상징인 청천백일만지홍기. 이 기(旗)가 국제 사회 곳곳에서 휘날릴 날이 올까?


*같이 보면 좋은 글 :

-주간동아 <마잉주 전 대만 총통 訪中, ‘신(新)국공합작’으로 정권교체?>

 https://n.news.naver.com/article/037/0000032287?cds=news_my_20s

-국제 사회에서 금기에 가까운 중화민국의 '국기'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93000

-앙숙인 대만의 전·현직 두 총통이 각각 美-中으로 간 까닭은?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0459


최종수정 : 2023.04.0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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