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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11. 2023

비가 왔다.

아침에만 해도 뜨거운 태양빛이 그 위용을 힘껏 드러내었다. 잠에서 깬 것은 정오가 얼마 남지 않은 무렵으로, 다 돌아간 빨래를 널러 들어간 비닐하우스40도는 족히 되는 듯한 온도는 금세 내 옷을 땀에 흠뻑 젖게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는 수건을 널러 갔는데,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내 몸은 기어이 땀에 아주 절어버리고야 말았다.

'아, 왜 하필 상의 세 장을 깜빡했더란 말이냐….'.

뒤늦게 남아있는 옷을 발견한 나는 속으로 탄성을 내지르며 다시 그 고온을 느끼러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쓰레기를 비우러 밖으로 나갔다. 목장갑을 낀 채로 주방, 동생 방, 내 방, 거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들고 문 앞에 서서 큰 봉지를 벌리고 나머지 것들을 죄다 부어넣는다.

아, 쏟아버렸다.

별 수 있나. 도로 집어다 넣어야지.


동생이 쓰레기통 안쪽이 지저분하다며 밖에서 씻는 동안, 갑자기 구름 떼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음, 이건 소나기가 온다는 건가? 빨래야 위에다 널어놨으니 젖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대체 비가 얼마나 세게, 또 오래 오려나.'

잠시 후, 호도독 떨어지던 빗방울은 곧이어 물줄기로 바뀌었고,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만들어진 구름은 늘 천둥과 번개를 데려온다. 섬광이 '번쩍' 하더니 몇 초 후 '쿠르릉'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천둥.


이런, 쓰레기통은 괜히 씻었네.


그렇게 비는 한바탕 쏟아졌고, 창밖 너머로 비 오는 것을 구경하던 나는 충전 중이던 핸드폰을 가져와 영상을 촬영했다. 얼마 후면 지겹게 내릴 비인데 뭘 그러나 싶지만, 마치 지상을 폭격하듯 맹렬하게 떨어져 바닥에 처박히는 빗줄기를 보노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강우(降雨)는 절정에 달하여 창틀을 넘어 창문을 때렸지만, 나는 빗소리를 담고자 창문을 조금 열었고, 혹시라도 비가 방 안으로 들이치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창틀 너비만큼 문을 열어둔 덕에 염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았던 비는 서서히 그 기세를 잃어 갔고, 짙은 회색빛을 띠었던 구름띠는 이윽고 흩어져 햇빛에 그 하얀 피부를 드러냈으며, 끝내 파란 하늘이 빼꼼 제 모습을 보인다.


한 달 전, 막 파릇파릇하게 올라왔던 옥수수는 이제 내 가슴팍 정도까지 컸다. 빗방울에 따귀를 맞아 위아래로 마구 흩날렸던 옥수수 이파리는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제 몸을 살랑살랑 내어 준다. 이는 다른 식물도 마찬가지다. 방에서 바로 내다 보이는 집 옆의 나무도, 건너편 언덕에 심긴, 장장 이삼십 미터는 될 나무의 윗부분도 부끄러운 듯 춤을 춘다. 그래도 6월은 6월이구나. 한 달만 더 지나면 세차게 내리는 비와 함께 불어제칠 바람은 그 자취를 감출 것이고, 촘촘한 물방울만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겠지. 그러면 한동안 몸을 놀렸던 에어컨이 한창 제 임무를 행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덥고 뜨거운 것이 너무 싫다. 평소 같으면 열심히 뚜벅뚜벅 걸었을 거리조차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는 프라이팬처럼 달궈져 기피 대상이 되고, 시원한 물이나 음료가 없으면 도무지 살아갈 맛이 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싫은 것은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다. 켜켜이 쌓여 며칠 내내 물을 뿌려대는 구름이 가득한 날씨. 잠깐 비가 그쳐 밖에 나가 보아도 습한 기운이 전신을 휘어감아 다시 시원한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빨리 비구름이 물러가 맑은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럼 또 더워서 찬물을 몸에 몇 번이고 끼얹겠지만, 여름날에야 볼 수 있는 맑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파아란 하늘이 제법 많이 보인다. 아직 구름에 가려 햇빛도 그리 강하지 않은 것 같으니, 마당에 한 번 나가 본다.

그새 물비린내를 풍기는 현관을 지나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오랜만에 제비 가족이 짹짹대며 집으로 찾아왔다. 이미 너희 집은 헐어 없어진 지 오래건만, 어이하여 이리로 왔니? 다시는 너희에게 벽을 내어주지 않아.


서늘해진 공기 사이로 해가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기지개를 켜듯 몸을 비틀며 숨을 깊게 들이쉬니, 옷에 배어든 쉰내가 코를 찌른다. 으, 당장 물을 끼얹고 비누칠을 하고 싶지만 이따 운동 갔다 와서 씻어야지.


전투기가 떴는지, 멀리 창공 너머로 옅은 굉음이 퍼져 나가더니 어디로 갔는지 이젠 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시원하다.


하늘
장미
목련나무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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