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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10. 2023

한 아이가 버스에 탔다.

면식은 없지만, 전에 같은 곳에서 버스에 올라 기억이 나는 아이.
오늘 녀석이 그때 그곳에서 버스를 탔다.

아이는 "초등학생이요." 하고 말하여 본인에 맞는 요금을 지불한 후, 굳이 잔뜩 비어 있는 앞쪽 자리를 놔두고 뒷쪽으로 들어왔다. 그마저도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갈팡질팡하다 끝내 내 앞자리인 제 왼쪽 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버스가 두 정거장을 지나 세 번째 정거장으로 떠날 때, 아이는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좌석에서 일어나 일찌감치 하차문 앞에 섰고, 곧이어 운전석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수고하세요!"라는, 애들이 할 거라고는 좀처럼 생각되지 않는 인삿말을 했다.
…일언반구도 않는 기사. 아이는 그가 무어라도 좋으니 대답을 하길 바랐으리라. 그러나 어쩌랴? 굳이 재차 인사를 건네기엔 내릴 때가 다 된 것을.
그렇게 아이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계단을 한 칸 내려가서 서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리고 나서 갑자기 앞문 반사경 쪽으로 가더니 기사를 향해 손을 마구 흔들며 꾸벅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이는 마치 "기사님, 저를 봐 주세요!" 하고 소리치는 듯한 몸짓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앞쪽의 승객들은 아이가 인사를 한다며 기특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정작 그 열렬한 배웅의 대상이었던 버스 기사는, 누가 그러든 말든 그냥 제 갈 길을 갔고, 그렇게 버스와 아이는 멀어졌다.




모(某) 태권도 도장에서 나눠준 상의를 입고 있던 짧은 머리의 그 아이.

누군가가 녀석에게 그렇게 하라 가르친 것일까, 아니면 순전히 자발적으로, 그저 수고하는 누군가에게 열심히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지만, 그 아이는 제 할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

버스 기사가 종점을 향해 운전대를 잡듯이.


그 가상한 태도에 한 마디 말이라도 되돌아갔다면, 그 어린 친구는 흐뭇한 마음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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