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권위는 대개 '필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인정받는다.
즉,
권위에 대한 관점의 변화로 인해, 권위자가 '권위'를 이유로 이를 행사하기가 어려워졌으며, 권위를 갖지 못한 이라 할지라도 권위가 권위란 이유로 이에 순응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관건은, 권위(자)가 지금 이 상황에서 내게 도움이 되느냐, 곧 '유용하냐'의 여부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기성세대는 권위 자체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므로 권위의 행사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신세대는 권위에 기본적으로 부정적이며, 그마저도 이를 유용성의 차원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당연히 부딪힐 수밖에.
그러나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개별적 권위, 곧 '특정 상황에서 직접 맞닥뜨리는 권위'일 뿐, 거시적 차원의 권위에는 대체적으로 별 관심이 없거나, 무비판적 내지 수용적이라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저 과장과 부장 새끼가 나한테 그 직책을 힘입어 지랄하는 건 뭐 같아도,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행사되는 권위에는 저항심이 덜하거나, 아예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편을 택한다는 의미다.
이로 볼 때,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권위의 층위'가 분리되었으며, 그로 인해 권위의 선택적 수용이 거시 차원과 미시 차원에서 상이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미시적 차원의 권위자에게는 그저 '안내자'나 '지식 전달자'의 역할만을 요구하며 그 이상의 행동은 거부하지만(예를 들면 가르침에 있어서도 '오직 당신이 갖고 있는 정보나 지식만 알려 주시오. 그 외의 것, 예를 들면 어떻게 살아라, 이렇게 해라 등과 같은 언행은 금지요.'와 같은 단서조항을 다는 것이다.), 정작 거시적 차원의 권위(자)에게는 나(의 삶)에 대한 지배권의 행사를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의 명령에 (또한 자발적으로) 순종하거나, 아예 이에 무관심해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하든지, '위'에서 하라니 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