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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l 28. 2023

'K-방역은 왜 독이 든 성배가 되었나'

저자 이덕희 교수

브런치(스토리)에 서평을 게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게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대상으로 서평을 쓴 것은, 본 도서의 저자가 바로 K-방역의 모순과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해 오신 이덕희 교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글을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인 이덕희 교수의 논조는 일관적이고 명확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회 모든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할 만큼 치명적이지 않으므로 건강한 사람은 일상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며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 전체적 저항성을 키우되, 고령자나 지병을 앓는 이들처럼 감염에 취약한 계층은 최대한 조심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중증 환자 수용이 불가할 정도로 의료 체계에 과부하가 오면 일시적으로 대응 강도를 높일 수 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의견을,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다. 이덕희 교수에게 붙은 딱지는 ‘살인(방조)자’, ‘사이비 의사(교수)’, ‘정부를 의도적으로 헐뜯는 정치세력’과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가 수도권 소재 대학이 아닌 지방 광역시 소재 대학 소속이라는 이유로 ‘지방대 교수가 뭘 아느냐’며 차별 내지 혐오 발언을 내뱉는 이들도 있었다.     


이덕희 교수는 가면 갈수록 거세지는 비방자들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뚝심 있게 지켜나갔다. 스웨덴과 일본의 사례를 들며 한국식의 고강도 통제 정책은 결코 오래 지속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한국인은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안 된다는 분위기에 휩싸여 그의 의견을 묵살했고, 스웨덴에서 확진자 폭이 증가하면 ‘집단면역 실패’, ‘스웨덴 방역 실패’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역시 K-방역이 최고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은 한낱 ‘통계 조작국’ 취급을 받았다.     


이렇게 정부와 한국인이 K-방역의 신화에 취해 있는 동안, 자영업자는 2주 단위로 변경되는 방역 정책으로 인해 이도저도 못한 채 생계 곤란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으며, 응급환자의 경우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당해 조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길 위에서 사망했다. 그뿐이랴? 장기간의 고립과 단절로 우울 증세를 넘어 우울증에 걸린 노인과 청년들, 관계 형성에 지장을 겪은 아이들과 청소년들까지, 이것이 과연 ‘무고한 사망자’ 한 사람의 발생을 막기 위해 기꺼이 감내해야 할 작은 희생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생명 이상으로 누군가의 권리와 자유, 존엄은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공동체의 안전을 명목으로 개인의 일상을 없는 것 취급했다. 그 대가가 바로 특정 시기(2022년 초) 전 세계 확진자 발생 1위, 초과사망률 1위였다.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던 방역 정책이 이런 결과를 냈다면, 분명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반성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게 다 마스크를 제대로 안 쓰고 백신을 맞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며 마녀사냥의 대상을 찾기에 급급했다. 끝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까지 통제 조치를 진행한 국가가 되었다(한국 이외에는 대만이 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없다. 아직도 방역 정책을 주도했던 교수들이 언론 인터뷰 대상자가 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런 모습을 개탄스러워한다.   


이덕희 교수가 브런치에 올린 글을 정리하여 출간된 <K-방역은 왜 독이 든 성배가 되었나>는 지난 3년간 이 사회에서 무비판적으로 자행된 방역에의 징비록이자,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떤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지침서다. 한 명의 의사이자 교수로서 과학적으로 한국의 방역을 비판했지만, 무엇보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방역이 지닌 모순과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이덕희 교수의 이 책은 국가주의와 자기중심주의의 정수와도 같았던 K-방역이 실은 얼마든 쉽게 무너질 수 있었던 사상누각과도 같음을 명쾌하게 드러내며, 권위자의 독단이 사회와 대중을 얼마나 강하게 조직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옳고 그름의 기준을 흐리게 함으로써 어느 한 의견과 행위만을 따르도록 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학 교양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서적으로서의 성격까지 갖고 있다. 그만큼 저자의 글은 다방면에 걸려 있으며, 이는 한편으론 방역이 순수 과학의 영역이 아닌 사회·정치 영역에 해당함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덕희 교수는 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방역은 옳았다 믿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신만의 인식 체계에 빠져 순환론적 논리 제시를 반복하는 이들이야말로 이 책을 보아야 한다. 결코 훌륭한 방역은 없다. 옳은 방역도 없다. 다만 바람직한 방역은 있다. 이덕희 교수는, 한국식 방역은 결코 바람직한 방역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한때 K-방역의 절대 옹위를 외쳤던 이로서, 감염자(집단) 맹렬히 비난하고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조금만 참아 달라’, ‘믿어 달라’는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이로서 생각을 바꾼 후 우연히 접한 이덕희 교수의 글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요, 절망 중 희망이었다. 중국식의 ‘제로 코로나’에는 온갖 비난과 조롱을 아끼지 않았으면서, 정작 한국식 방역의 목표야말로 실은 ‘제로 코로나’였음을 외면하고 간과해 온 이들에게, 이덕희 교수의 글은 옳다고 믿는 것이 반드시 옳지는 않음을, 틀렸다 여겨진 것이야말로 바른 길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반례이자 반증이다.


이 더운 여름에 다시 확진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토록 열심히 마스크와 백신, 거리 두기에 의존해 왔던 한국이 왜 아직 유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정부가 잘못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해이해져서 그런 게 아니다. 애초에 잘못된 목표를 설정했고, 이를 모두가 따랐기에 발생한 당연한 결과다. 왜 그런지를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보길 바란다. 여기에 답이 있다.




방역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 한국 사회를 위해 긴 시간 애써 오신 이덕희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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