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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Nov 07. 2023

레깅스 입을 자유를!

우리 그냥 좀 자유롭고 편하게 삽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 또한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다소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복장의 자유도 좋지만 의도치 않게 그런 복장을 입은 사람을 보게 되는 이들의 민망함이나 불편함도 고려돼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글도 썼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그들은 그들이 입고자 하는 옷을 입었을 뿐이다. 그것이 타인에게 민망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자제하라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개입이자 간섭이다. 그런 복장을 입는 이들이 불편하다면, 그냥 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굳이 어디에 표출할 이유가 없다. 이런 태도는 곧 자유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고 저열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사회·문화적 풍토가 다 옳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동양의 토양을 밟고 살아왔기에 그 영향력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이런 불편함이나 불쾌함에의 척도는 자유주의 국가의 개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나칠 때가 상당히 많다. 왜 굳이 타인에게 시선을 두고, 다른 이들의 외양이나 삶을 의식하면서 그들을 판단하려 드나? 이는 애초에 안 그러면 되는 문제다.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이기에 타인의 반응이나 생각을 거의 매번 고려해야 하는 아주 번거롭고 소모적인 사회다. 이런 곳에선 열에 아홉 나의 의사(의지)보다 타인의 시선(관점)을 우선시해야만 한다.

이 사회를 진정 자유로운 개인이 살아가는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방종에의 기준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뭐만 맘에 안 들면 방종 운운하지 말고, 타인에게 신경을 끄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들이 뭐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려고 레깅스를 입겠나? 그렇지 않다. 편하니까, 실용적이니까,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 마음이니까' 그런 것이다. 서양 여성들은 짧은 민소매를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내가 불편하니 그러지 말라' 하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개인주의 사회의 개인으로서 타인의 외양이나 행동에 일체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 사회는 한참 멀었다. 사사건건 '나의 감정'을 이유로 타인의 행동을 규제하려 들고, 극단적으로는 나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을 사회적으로 제재하려고까지 든다.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자유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왜 자꾸 자유에 감정·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가? 그냥 좀 자유의 의미에 걸맞게 살아가라. 자유는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뜻이다. 내 생각과 행동의 본위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 이 원칙이자 중요한 전제를 가슴에 좀 새겨라. 자기 자신을 남에게서 해방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근본이자 핵심이다.


언제까지 레깅스 복장을 주제로 기사가 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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