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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l 11. 2022

한국은, 한국인은 왜 과감해지지 못하나?

자유로운 삶, '이전의 삶'을 스스로만 못 누리고 있음을 왜 외면하는가?

우연히 <도포자락 휘날리며>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봤다. 네 명의 남성이 국외 나가는 장면이는데, 상에는 수많은 외국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자유로이 공항을 누고, 또 그곳에서 대기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유지인 튀르키예(터키)에서도, 목적지인 덴마크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그 어떤 강제성의 작용 없이 순전히 마스크 착용 여부를 '선택'했다. 앞으로의 여정에 설레어하며 웃는 낯선 이들의 맨얼굴을 보니, '저게 사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모습에 비해, 한국인은 이런 상황이 부끄러운 줄도, 이런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살고 있으며, 심지어는 이를 다른 사람에까지 종용하고 강요한다. 그게 벌써 햇수로 3년째다. 스스로를 위한다는 것이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옥죄기 시작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열심히 그것이 '규칙'임을 이유로 이를 자연스럽게, 또는 열심히 따르고 있다. 아마 내일도 다르지 않겠지.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회복시켜줄 것이란 기대, 하라는 대로 하면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란 헛된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로.


그 많은 '이기적인' 외국 사람들과 그곳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또한 '이기적인' 방송 출연자들의 모습이 내게는 오로지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그것이 내가 이기적이라 그런 것이라면, 난 기꺼이 이기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오히려 사태 파악도, 현실 인식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여전히 나와 같은 이를 이기적이라 매도하는 이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이타적인 민족과 국가가 정작 방역이란 가장 깊은 늪에 빠져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허우적대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애써 외면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인을, 한국을 구원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외국에 있는 이들이 마스크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것은 그들이 어리석어서, 한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로,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 폄하, 한편으로는 '한국에 살 거면 한국의 룰을 따르라'며 이의를 무참히 묵살한다.


선택이 없는 나라, 자율성은 온데간데없이 획일성과 일률성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나라, 한국.

어쩌면 부딪히려 하지 않은 이들,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이들이 누리는 삶은 이런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과 함께,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것에 박탈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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