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에 대하여
상식은 견고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히 얄팍하다.
사람의 인간, 사회, 세계에 대한 인식은 '지식의 정도'에 좌우된다. 즉, 한번 지식이 입력된 후 그것이 굳어지면 인간의 인식은 어떤 중대한 사건을 겪지 않는 한 거의 바뀌지 않는다. '거의'란 표현을 쓴 것은, 우연한 한두 사건으로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날 수 있음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통된 인식은 '상식'이라 일컬어지는데, 상식은 곧 다수가 가진 지식의 정도이자 세상에 대한 인식이다. 그 범위는 자못 넓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담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상식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세계와 우주는 딱 상식만큼 인식되며, 달리 말해 상식 이외의 것은 세계와 우주의 영역에 들지 않는다.
상식은 반드시 참을 전제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공통으로 인식하는 바라 해서 꼭 맞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식은 꽤나 공고하지만 이에는 생각보다 빈 구석이 많으며, 사람과 집단, 문화에 따라 그 범위와 대상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보편성이나 항구성을 띠지 않는다. 이로 인해 상식이 옳다 여기는 사람들은 곧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판단이 틀리지 않는다는 인식을 기본 전제로 삼는다. 이 전제가 뒤틀리면 상식은 전복된다.
여기에서 상식은 단순히 앎의 영역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상식이 상식이 되기 위해선 이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즉 '믿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이 일정 수준의 지식(정보)와 이를 정당화하는 믿음으로 구성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러한 진실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믿음이란 21세기 사회에서는 덜떨어지고 반지성적인 사람들이나 갖고 있는 것이란 인식이 곧 '상식'이어서다.
이런 이유로 상식에는 힘이 있다. 그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상식은 사람을 동원한다. 그리하여 상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을 배제하고, 이에 도전하는 이들을 흩어버리려 든다. 상식을 거부했던 이들은 이런 이유로 대개 스러져 갔다. 간혹 살아남은 소수는 근근히 버티며 상식에 저항했고, 그중 누군가는 매우 낮은 확률로 세상을 바꾸었다. 우리는 그들을 일러 '(위대한)사상가' 또는 '혁명가'라 한다.
상식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들의 믿음을 먹으며 부단히 세를 불려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식, 그리고 이를 내면화한 이들은 상호 협력하에 그들을 거부하는 이들을 계속해서 골라낼 것이고, 그렇게 상식과 그 추종자들의 반대파는 '몰상식한 이', '비상식적인 이'로 규정되어 사고의 교정(矯正)을 강제당할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상식이야말로 꽤나 비상식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웃기고 또 모순적인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