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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l 14. 2022

대만에서 반중(反中)의 척도는?

바로 '친일'이다.

민족주의적 감정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인이 보기에 이해가 안 가는 점이라면 바로 일본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어떤 한국인은 '나는 일본 정부와 그 태도가 싫은 것이지 일본과 일본인이 싫은 것은 아니'라며 선을 긋지만, 또 어떤 한국인은 '일본 정부와 일본이란 나라, 그리고 일본인을 어떻게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느냐'는 이유로 다 똑같은 대상으로 간주하여 못마땅하게 본다. 한편으로는 (이런 언쟁과는 별개로) 정치에는 관심을 끈 채 일본이란 나라와 그 문화를 좋아하는 이와, 이념적 이유로 일본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얼핏 보면 다양해 보이지만 여전히 한국은 일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부정적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예 국가 차원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나라가 있다. 공식 국호가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로서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함께 '양안(兩岸)'으로 묶이는 나라, 일반적으로는 '대만' 또는 '타이완'이라고 불리는 국가다. 이 나라에서 일본을 매우 좋아한다는 점,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총통)이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단 말을 듣는다면 더더욱. 하지만 사정을 들으면 공감은 못 할지언정 이해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최근 대만에서는 한 차례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보수 진영인 범람(泛藍) 세력과 진보 진영인 범록(泛綠) 세력간의 다툼인데, 거의 일방적으로 보수 진영  맞다시피 할 정도로 여론이 안 좋다.

사건의 배경인즉, 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하면서 각국에서 충격에 휩싸였는데, 대만이에 크게 반응한 나라 중 하나로, 피습 소식이 각 언론사를 통해 속보로 전해 가운데 현 중화민국 총통인 차이잉원(蔡英文)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건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몇 시간 뒤, 아베 총리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자 중화민국 정부에서는 비공식 조문단으로(개인 자격으로 참가) 부총통(부통령)인 라이칭더(賴淸德)를 파견할 정도로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심지어는 정부 기관에서 아베의 죽음을 기하여 11일 하루간 조기(弔旗)를 게양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적으로 심각한 사건이나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이에 애도하거나 이를 추모하는 의미로 하는 조기 게양을 타국 전 수뇌가 서거했음을 이유로 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아베의 죽음 때문이라기보다도, 아베 전 총리가 생전 대만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일본-대만 우호 관계 유지에 기여했다는 점을 기렸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였다.

-중화민국 총통부 최상층에 게양된 청천백일만지홍기 조기

(출처 : 降半旗悼安倍 藍營嗆媚日 謝志偉諷:等你不降共 旗子就還你 | 政治 | Newtalk新聞)


대만의 보수 세력이자 현 야당인 신당(新黨), 중국국민당 소속으로서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대표적 인물인 장야중(장아중, 張亞中) 등이 이를 '위헌'이라며 지적했고, 보수 성향의 한 변호사는 "일본을 좋아하는 것은 당신(총통 차이잉원)의 결정일 뿐이니 부디 법을 어기지 말라(예칭위엔, 葉慶元)" 일갈한 것이다. 여기서 위헌이라 함은, 중화민국 헌법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자국의 국가 원수와 부원수가 서거했을 때 무조건 조기를 걸게 되어 있지만, 타국의 '전직 국가 수반' 대한 조항은 없으므로 그가 별세한 것을 갖다가 조기를 게양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서거한 이 중 아래에 언급된 자에 한하여 총통의 결정으로 조기 게양 대상자가 될 수 있는데, '국가에 공(功)을 세웠거나 공헌한 자, 세계 평화나 인류 진보에 공헌한 자, 현직 우방국 원수'가 이에 해당한다(下列人士逝世,經總統決定者,下半旗:一、對國家有特殊勳勞或偉大貢獻者。二、對世界和平或人類進步有偉大貢獻者。三、現任友邦元首。).
이에 따르면 아베 신조는 '국가에 공헌한 자'로 조기 게양 대상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베의 죽음을 애도할 목적의 조기 게양은 미국과 인도 등 몇 개국에서도 시행한 바 있다. 그러니 일본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중화민국 정부, 특히 현 집권당인 민주진보당 입장에서는 마땅히 해야 할 바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행 헌법을 중시하는 중국국민당과 신당 입장에선 아무리 추모하고자 해도 어떻게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그리할 수 있냐는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이는 차이잉원 총통과는 달리 '조기 게양 대상자'로서 '국가에 공이 있거나 크게 공헌한 자'에는 아베가 해당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다른 두 가지 조항에 의거하여 그가 조기 게양 대상자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해석함에 따른 의견인 듯함). 일부 인사 차원의 이의 제기라지만, 장야중이란 인물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넘어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통파(統派)에 속하며, 작년에 있었던 중국국민당 당 대표 선출에 후보로 참여했단 점에서 보수 진영에서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런 이가 조기 게양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으니 당연히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범람 세력의 인사들이 이런 주장을 하자마자 집권당인 민진당에서는 이에 집중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만 중부의 타이중(臺中)시 의원이자 민진당 청년부 주임을 맡고 있는 저우융훙(주영홍, 周永鴻)은 한 방송에서 중국국민당이 역사 의식과 국제 시각을 결여하고 있다 비판하며, 아베 전 총리'대만에 일이 있으면(문제가 있으면) 일본에 일이 있고, 일본에 일이 있으면 미일 동맹에도 일이 있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음을 들어 정부의 결정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한 아가 '대만의 굴기(崛起)', '대만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말했던 것이 대만 사람들을 격려했고, 그가 AZ(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만에 무상 공여하고 대중국 대만 파인애플 수출이 막히자 이를 수입한 전력을 언급하며 아베의 대만에 대한 공헌이 상당함을 적극 피력했다.

▲아베의 생전 친대만 행보를 보여주는 사진. 첫 번째는 대만산 파인애플(臺灣鳳梨)을 들고 웃고 있는 사진이며, 두 번째는 '대만 힘내라(臺灣加油)'라는 글귀로 아베가 직접 쓴 것.

-출처 : https://www.ettoday.net/amp/amp_news.php7?news_id=2291058 (해당 신문사에서 아베 전 총리 SNS 사진을 따옴)


국민당 및 보수 진영 인사들이 아베 전 총리의 서거에 조기를 게양한 것을 비판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중국국민당이 193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45년에 끝난 항일전쟁의 주역이었기 때문이고, 비록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 오긴 했지만, 현 중국국민당 또한 '중국 의식'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기에 옛 선조들의 행보와 자신들의 사상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만의 보수 세력은 일본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나라의 정치 세력과 비교하면 정반대로, 각국의 진보-보수가 뒤바뀌어 있는 것과 같다. 좌우간 이러한 이유로 대만의 보수 세력은 위와 같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대만의 여론은 요즘 보수 세력인 범람 진영에 우호적이지 않다. 2019년에 있었던 '범죄자 본토 송환법 반대 시위'로 인해 홍콩의 자치가 크게 훼손되자 대만 국민들의 대중국 감정은 완전히 악화됐고, 여기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더해지며 '대만도 침략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여전히 적잖은 사람들은 침공 위협이 중국의 허장성세(허세)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중국이 정말 침공할지 모른다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는 점에서 여전히 중국적 정체성을 놓지 않는, 심지어는 통일을 적극 지향하는 세력이 주류로 활동하는 중국국민당과 여타 보수세력을 좋게 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과 같이 대만에 우호적인 나라에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표하는 것은 곧 대만을 지키는 것이란 프레임이 형성됐고, 민진당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보수 세력이 나라를 팔아먹는 것처럼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라 당장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나쁜 상황에서 보수 세력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정작 중국 대륙의 한 학자는 '국민당이 중국적 정체성을 견지하지 않는다면 10년 이내에 망할 것'이란 악평을 내놓기까지 했으니 100년 정당 국민당 입장에선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셈이다.


이렇게까지 민진당을 필두로 한 범록 세력이 일본에 목을 매는 이유는, 겨우 열 몇 개 국가 정도와만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상태인데다 언제 이마저도 끊길지 모르는 상황에 있기에 국제 사회에서 대만의 입지가 늘 위태롭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 대만을 그나마 지지해주는 국가가 일본으로, 일본은 상대적으로 중국의 눈치를 덜 봐도 되는 위치에 있기에 대만 관련 발언을 그다지 서슴없이 하는 편이다(웃긴 건 일본이 주요국 가운데 꽤나 빨리 중화민국과 단교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중국국민당이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할양되어 있었던 대만을 접수하고 이곳에 행정장관 천이(진의, 陳儀)를 파견했는데, 드디어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중국'의 그늘로 들어가나 싶었던 대만인을 오히려 더 가혹한 방식으로 통치했고, 그 과정에서 1947년에 '2.28 사건', 즉 대만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이들을 대규모로 학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만 사람들의 정체성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국민당 독재에 항거하여 중국적 가치관을 떨쳐내려 했던 이들이 바로 현 집권 세력인 민진당의 창당 발기인 격이라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으며, 오죽하면 위에 언급한 '중화민국 전 총통'인 리덩이(이등휘, 李登輝, 1923-2020)가 중국국민당 출신으로 국가 수반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이와는 별개로 퇴임 후 본격적으로 친일 및 대만 독립 성향을 드러냈을지를 생각해 볼 때에, 그가 일제 시대 대만에서 태어나 일본군 소위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아주 결정적인 요인임을 발견하게 된다(그리고 리 전 총통이 퇴임 후 방일했을 때 그와 동행한 이가 바로 아베 신조 전 총리다). 이처럼 대만 독립을 주장하거나 반중국 행보를 적극 채택하는 대만 진보 세력에게 친일과 반중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만의 친중-반중 논란과 이에 따른 각 정당의 행보는 한국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패권 확대는 반드시 그 인접국에 가장 먼저 영향력을 끼치고 있고, 이를 가장 강하게 체감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과 대만이기 때문이다.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限韓令)이 (비공식적으로) 발효되며 국내 기업이 큰 피해를 입었고, 대륙에서 활동하는 대만 출신의 상인(타이상, 臺商)집권당인 민진당에 후원금을 내자 각종 법률 위반을 이유로 그 그룹에 거액의 벌금을 부과했다는 점 또한 대만 정치 및 경제지속적 위협 요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실용외교'를 외치며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일방적으로 중국의 입김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실용외교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점에서, 입장은 취하되 과감히 이를 실행하지는 못하는 두 나라의 처지는 상당히 비슷하다.


엄밀히 말해 대만의 명운을 결정하는 것은 비단 현 집권 세력인 범록 진영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대만의 보수 세력이 중국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대만의 명운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데, 당의 영수이자 총통인 차이잉원이 현상 유지('중국' 내지 '중화'라는 큰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미)를 공언한 덕에 이 정도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범람 진영에서 중국적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그나마 중국 정부가 대만을 안 건드리는 것도 사실이라 그들이 자칫 '대만화'를 택했다간 정말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에서 대만의 정국을 볼 때마다 아슬아슬할 뿐이다.

개인적인 전망으로, 중국은 대만에게 '실체적 위협'이기 때문에 대만은 '탈중국'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고, 한국 또한 정치적으로는 중국과 계속 거리를 두려 하지 않을까 싶다(다만 한국은 남북 통일과 경제 문제가 걸려 있어 대만보다는 덜 적극적일 것이다). 만약 중국에서 전랑 외교와 같은 공격적 대외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지만, 늑대에게 얌전히 있기를 바라는 것도 웃긴 일이니, 앞으로 한국과 대만 양국이 중국의 거센 입김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매우 주목된다.


과연 중화민국의 범람 진영(보수 세력)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07.23. 23:14 최종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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