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면회하고 온 날.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하셨다.
가족들이 연명치료 동의서를 작성했고,
힘든 밤을 넘기신 할머니는 입안에 두꺼운 호스를 물고 코에는 길게 연결된 튜브를 단 채 침대 위에 축 늘어져 계셨다.
“너무 힘들어 보이시잖아… ”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보이시는 할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내려
어깨가 들썩이게 울음이 터져버렸다.
“할머니.. 할머니 손녀야.. 나왔어. ”
귀가 어두우신 할머니가 나를 알아들으실까 싶어
얼굴 가까이 다가가 큰 소리로 불러드렸다.
손끝으로 할머니의 이마와 손을 쓰다듬으며,
내가 왔다는 걸, 손녀가 곁에 있다는 걸 꼭 전하고 싶었다.
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
치매가 깊어지며, 기억의 끈들이 하나둘씩 끊어졌고 먼 길을 운전해서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가도
눈을 피하시고 낯설게 날 바라보시는 순간들이 많아졌었다.
그런데도 가끔, 아주 짧은 순간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이시던 때가 있었는데
그날도 잠에 드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조용히 주변을 살피시던 그 시선이 이내 나와 남편을 번갈아 비추었고,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으며 눈물만 계속 흘렸다.
‘알아보시는구나…’
할머니는 고통스러우신 듯 가끔 몸을 움찔하셨고
숨 쉬는 것도 무척 힘겨워 보이셨다.
자꾸 깨우면 더 괴로우실까 봐
나는 조용히, 침대 옆에 서서 마스크 뒤로
눈물을 감추고 그저 할머니가
평안하게 잠드시기를 바랐다.
할머니는 두세 번 눈을 뜨시고 나를 바라보셨다.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듯한 눈빛이었지만
끝내 어떤 말씀을 하시진 못하시고 다시 눈을 감으셨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할머니는 어린 내게 시시콜콜한 잔소리를 하는 유일한 어른이셨다.
공부해라, 잘해라 같은 말은 하지 않으셨다.
대신 나는 언제나,
“춥다, 더 껴입어라. 허리 펴고 다녀라. 밥 굶지 마라.”
그런 말들을 들으며 자랐다.
그때는 그런 말들이 귀찮아서 할머니께 짜증 낼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 잔소리가 너무 그립다.
너무 듣고 싶다.
할머니는 내가 응석 부리며 짜증을 부릴 수 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단단한 사람이었다.
내 얼굴을 두툼한 손으로 어루만져주시고,
예쁘다고 등을 툭툭 두드려주시던 그 손.
그 두툼한 손을 잡고 걸어갈 때면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 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안전했다.
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시고 나서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너무 힘들어서 사실 한동안 할머니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그저 사는 게 나도 너무 버겁고 힘들 때가 많아
일단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내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할머니도 그렇게 사셨을까.
하루하루 나와 언니를 지켜내시며.
할머니를 이렇게 보내드리고 나면
나는 평생 비워지지 않을 깊은 슬픔의 잔이 생길 것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할머니가 더 아프시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시고
하나님 품 안에서 평안히 안겨 계시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어린 나를 지켜주셨던 그 손이 너무 그립다.
세상 무엇보다 해맑게 웃던 아이 같던 할머니 미소가 너무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