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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주인 Apr 28. 2024

세상이 모두 "틀렸다" 할지라도...

싱글대디와 미스, 재혼가정 연대기<4>

이혼, 돌싱, 재혼...

지금은 흔한 시대지만 가족들에게 재혼 이야기를 꺼냈던 2012년은 집안수치, 금기시되던 시대였다.


우리도 알았다.

'이혼하고 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내가, 9살 어린 아가씨와 결혼하겠다'라고 했을 때, 그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할 것을. 하지만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아들, 부모님, 여친부모님에게 우리 관계를 이야기했던 시점으로 돌아가본다.


장면 1# 아들에게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가씨가 왜 아빠와 결혼해? 우리집이 부자야?"

아들의 첫 반응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한번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들은 관계에 대한 신뢰가 깨져있었다. 이 상황을 의심했다. 되도록 아들과 미래 엄마와의 관계를 아주 천천히 만들어 가야 했다.

하지만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 중인 상태에서 갑자기 아들과 생활을 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사람에 대해 의심이 많은 아들과 갑자기 엄마가 된 아내와의 관계는 아슬아슬했다. 아내와 아들은 미세한 충격도 깨질 듯이 금이 가있는 와인잔 같았고 양쪽 상황을 조율해야 하는 나는 늘 조마조마 했다. 아들과 아내가 갈등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나? 정말 어려운 숙제였다.


장면 2# 부모님에게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미쳤어, 그러다 애 다 망친다"

부모님은 내가 젊은 여자에 미쳤다고 했다. 아직도 여자에 정신 못 차린다고.

실 아버지는 아들의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네가 뭐가 못나서 이혼당했냐고. 그X(전처)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그냥 있으면 사고를 치실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바람피다 걸렸다'로 아버지의 화를 누그려뜨렸었다. 근데 이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이야. 아버지는 나를 발정 난 XXX로 생각하셨다. 당연히 여자친구를 만나 보려고도 하지 않으셨다.


장면 3# 처음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갔을 때

"바람 펴서 이혼당한 개XX가 감히 누구 딸을 넘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여자친구 아버지가 뛰어오면서  2단 옆차기 하시는 게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피할까? 맞고 버틸까? 맞고 쓰러질까? 그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혹 피하면 아버님이 다치실까 봐 맞고 쓰러졌다. 몸을 추스리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처남이 말렸다. 아버지 혈압 때문에 쓰러진다고. 어쩔 수 없이 신발도 못 벗고 현관에서 "죄송합니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인사하고 물러났다. 아니 쫓겨났다. 

그 당시 '이혼남=바람'이었다. 지방에서는 더 그랬다.


#장면 4. '태어난 시'를 알아오라는 여친 어머니 때문에 간 유명한 점집

"그러니까 지금 뻥사주를 봐달라는 거지?.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냥 가"

무속인은 아주 기분 나빠했지만 나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내 팔자가 쎄다고 들어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난 사주를 믿지는 않는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가 재혼이라 반대가 너무 심한데 사주까지 안 맞으면 끝입니다"

나가라는 걸 계속 버티자 영업에 방해가 됐는지 무속인은 결국 내 말을 들어줬다.

"이거면 우리나라 어느 점집에 가도 둘 사주는 좋다고 할 거야, 복비 많이 내"

20만원 내고 여자친구에게 가장 잘 맞는 나의 '가짜 태어난 시'를 받을 수 있었다.

여자친구 어머니는 사주 같은 걸 믿는 분이셨다. '뻥사주' 덕분인지 더 이상 사주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무속인이 용했나 보다.


모두 우리가 틀렸다고 했다. 미쳤다고 했다.

각자 집에는 엄청난 후폭풍이 왔다. 자식 잘못 키웠다고 부모님들끼리 다투셨고 아이에게도 민감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성보다 감정이 폭발했다. 정말 TV '사랑과 전쟁' 같은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더 자세한 이야기는 중략. 부모님께 죄송하다)


이런 상황들에 우리도 흔들릴 때가 있었지만 한편으론 더 단단해져 갔다.  우린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1. 어떤 상황도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히 이야기한다.

2. 각자의 집 상황은 본인이 가장 잘 아니 각자 방법을 찾고 상대방은 믿고 따라간다.

3.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가족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진다.


13년이 흘렀다. 모두가 틀렸다고 했지만 우리는 단단하고 편안한 가정을 만들었다. 초등생 이었던 아이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세상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님도 계신다. 하지만 어쩌겠나. 자식이 부모를 이길수도, 부모가 다 큰 자식을 이기실 수도 없으니... 시간이 더 흘러가야 될 수밖에.

부모님 인정을 기다리다 결국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결혼식 대신 웨딩사진을 가장 화려한 도시 뉴욕에서 찍었다. 아내에게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최근 재혼 연구조사에서 재혼 부부의 75%가 이혼한다고  한다. 실패 원인은

1) 복잡해진 가족관계

2) 전배우자와의 비교

3) '두 번 실패할 수 없다'는 집착

때문에 이란다. 나도 실패원인에 동감한다.


재혼 정말 쉽지 않다. 초혼 보다 수십 배 더 어렵다. 결혼은 여러 번 한다고 느는 게 아니다.

선우은숙과 유영재 재혼(삼혼?)을 보면서 "어, 너무 서두르는데"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국 이혼소송을 하고 있다. 끝까지 함께 할게 아니라면 시작을 안 하는 게 좋다. 아니면 가벼운 연애만 즐겨라. 


하지만 말이다.

만약 평생 함께 하고 싶은 누군가가 생긴다면(우선 축하한다) 한번 실패했다고, 주변이 반대한다고 재혼을 피하지만은 말기 바란다.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실패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실패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결혼에 있어서는.


재혼을 고민 중이거나 재혼가정을 꾸려가는 분들에게 내 글이 힘과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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