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대디&미스 재혼가정 연대기<3>
"오늘만 산다"
한때 우리가 그랬다. 싱글대디와 미스였던 우리가, 미래만 봤다면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다.
원래 난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혼 후 더 심해졌다. 오늘 보다 내일에 자꾸 신경에 쓰였다. 이혼하고 제일 먼저 아이를 위해 보험에 가입했던 나였다. 생명보험, 종신보험, 변액보험... 월급의 절반 이상을 납입했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우리 관계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고 그녀에게 감사하다. 그녀는 무모하리만큼 나를 사랑해 주었고 내가 실패자가 아니라며 상처를 어루만져주었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만 남아 있던 나에게 행복이란 단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다. 야근과 출장, 그리고 주말은 대구에 있었기 때문에 평일 늦게, 아쉬운 데이트를 했었다. 그러다 2주간 미국 출장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우린 간절히 함께 있고 싶었다.
우리는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도록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우선 회사를 설득해야 했다. 미친 듯이 계약을 위해 뛰어다녔고 반년만에 연간목표 달성 후 회사에 이야기했다. '이혼 후 일중독'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회사 승인은 어렵지 않았다. 부서원들도 내가 자리 비우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문제는 어머니와 아이에게 이야기하는 거였다. 2년이 지나도록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못 꺼냈다. 내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께, 이혼의 상처가 있는 아이에게 내가 행복한 것이 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엄마, 나 해외 출장 가는데 좀 많이 길어, 손자 때문에 힘들어서 어째..." 여자친구와 간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죄송해요 엄마)
2011년 8월. 우린 그렇게 한 달간의 터키, 크로아티아 여행을 떠났다. 이스탄불에서 안탈리아까지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까지 버스일주를 했다. 특히 크로아티아에서 우린 완전 자유인이었다. 2013년 '꽃보다 할배' 방송 전이어서 크로아티아는 미지의 땅이었다.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인생의 가장 완벽한 한 달이었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함을 느꼈고 이 감정을 영원히 가져가고 싶었다. 여행을 마칠 때쯤 미래를 약속했다. 같이 지낼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이사를 했다. 우린 현실의 벽을 넘을 준비를 시작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당시 우린 알 수 없는 미래를 잠시 내려놓았다. 대신 매일매일 행복한 기억과 든든한 신뢰를 쌓아나갔다. 힘을 비축한 우리는 가족의 반대와 아이의 의심에도 흔들리지 않고 손잡고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때론 미래만 걱정하다 현재를 망치곤 한다.
반대로 현재에만 몰입하다 미래에 후회하기도 한다.
그 중간쯤 어디.... 그걸 알아가는 게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