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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주인 Apr 21. 2024

싱글대디인 내가 욕심부려도 될까?

싱글대디&미스 재혼가정 연대기<2>

"나 이혼했었어"

"큰 아이도 있어"


지금껏 꽁꽁 숨겨왔는 그 말, '이혼'.

그녀를 두 번째 만났을 때 이 말이 툭 튀어나왔다. 커져가는 마음이 두려워 미리 벽을 친 것일까?


친한 동생과 저녁을 먹고 있을 때였다.

"형, 잘 아는 여자후배가 근처에 있다는데 오라고 해도 돼?"

"응, 같이 먹지 뭐"

그렇게 우리는 처음 만났다. (고맙다, 동생아)


"이쪽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

"이쪽은 예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

"내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같이 불렀어"


그녀는 비타민 같았다. 이뻤다. 그리고 어렸다. 이야기도 잘했지만 잘 들어주기도 했다. 그녀는 술을 전혀 못했지만 우린 같은 지방 출신이라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잘 통했다. 우린 그날 꽤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녀는 참 매력적이었다.


얼마 후 그 동생에게 전화했는데 그녀와 밥 먹고 있으니 얼른 오라고 했다. 좋음, 기대, 설렘... 이혼 후 이런 감정은 단 한 번도 없었던 나다. 이상했다. 그랬던 내가 뛰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다시 보니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이래도 되나 싶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뜬금없이 이혼과 아이를 이야기했다. 보통 이혼남에 아이까지 데리고 있으면 바람 피워서 이혼당한 XXX라 생각한다. 그녀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연락처를 줬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맛집과 이쁜 카페를 찾아다녔고 거의 모든 영화를 봤다. 알코올중독에서도 벗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감정이 충돌했다. 


"내가 누굴 좋아해도 되나? 욕심이지 않을까?"

나는 싱글대디, 그녀는 미스.

나는 35, 그녀는 26... 9살 차이.

미안했다. 떳떳하지 못했다.


그녀를 만난 지 반년 정도 지난,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매주 그랬던 것처럼 주말은 대구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을 나가는 그 순간,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천사를 봤다. 뛰어가 포옹하며 속삭였다. "내가 좋아해도 될까?" 

"나도 좋아해" 그녀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우리는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말해주었다. 우리가 두 번째 만나던 날. 내가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우리 관계는 없었을 거라고. 그날 놀라기는 했지만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할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착한 거짓말'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끝까지 가기 위해선 엄청난 현실의 벽을 넘어야 한다. 상대방을 위한다고 거짓말로 포장하면 결국 더 큰 거짓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상처를 받더라도 믿음과 신뢰를 선택했다.

이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왔으며 우리는 따뜻하고 단단한 재혼가정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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