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는 선생님이 내게 묻는다.
“고통을... 잘 참으시나요?”
“네...?”
나는 이름난 근골격계질환 전문 환자!라고 지금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지난날 2년간을 부상 때문에 주사, 충격파치료를 받고 그것도 안되어
운동치료(펑셔널트레이닝)까지 정형외과를 문턱 닳도록 다녔음에도
어떠한 진일보도 없을 때 나는 병들어갔다.
뭐 별 수 없는 수순이었다.
정신과 전문의는 몸에 대한 감각이 발달하고 또 그것을 중시하는 탓에
더 그럴 수 있다고 위로했으나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평생 절뚝이면서 걸어야 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계속 이렇게 보조기 없이 안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는 어떡하지…
그러다 그 어떡하지가 좀 사그라들 무렵, 좌골신경통이 나를 찾아왔다.
그게 뭔지도 몰랐다. 그게 뭔지도 몰라서 진단명이 나오는데도 한세월,
알고 나서 치료하는데도 한세월 그렇게 두 세월은 족히 흐른 듯했다.
나는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무슨 방도를 찾는 것도 이제는 너무나 지쳤다.
그렇게 앞으로 뒤집고 옆으로 뒤집으며 누워있다 문득
버스 타면서 늘 보던 풍경 중 '지압 마사지'간판이 떠올랐다.
거기다 '맹인 마사지사'라고 하니 제대로 일 것 같았다.
언니 말로는 원래 마사지사는 맹인만 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나는 생각이 끝나자 얼른 전화를 걸었다.
"얼마인가요"
"00분에 얼마예요. 하지만 안 좋으신 분들은 60에 00짜리를 받고 가세요"
… 침묵이 흘렀다. 둘 다 가격이 적지 않았다.
“좀 아까 60분에 그 보통가격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돈이 없어서요..”
....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일단 오세요 잘해드릴게요" 그러신다.
돈은 없고 몸은 아프고 날을 밝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운동 겸 걸어갔다.
이윽고 허름한 건물 이층에 도착했다.
문을 딸랑 열고 들어갔다.
"저.. 아까 전화드렸는데요."
맹인 마사지사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 공기가 이상했다.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으라고 말해준 다음에도
아저씨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이상한 기분을 받았다.
나는 계속해서 흐르는 돌 같은 침묵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눈이 감겨있는 사람에게 내 숨모양까지 알알히 스캔되어
입력되는 기분이 들었다.
돌연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눈 달린 게 자랑은 아니지만 압도될 건 뭔가...
압도될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거기 있는 공기하나하나까지 전부 다 그 아저씨 것 같아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한 게
영화 [여인의 향기]를 보고 단번에 납득이 갔다.
공기를 읽는 사람과 독대할 때의 그 무게란..
언제까지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아저씨는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러저러한 증상이 있다고 하자
아저씨는 대뜸
고통을.. 잘 참으시나요..?라고 물었다.
네…..?
여기 나.
또래에 비하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쪽으로 역사가 많긴 하다.
‘고통의 역치가 높으시네요’라고 실밥을 뜯던 외과의사에게 칭찬을 들었을 정도로..
“기준이.. 기준이 뭔가요..”
밑도 끝도 없는 그 질문에서 일단 기준부터 구해야 했다.
“고통을 좀 참을 수 있으시면 바로 고쳐드릴 수가 있죠..”
라며 더 서늘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게 무슨.. 이 볕이 찬란한 날.
나는 날을 잘못 골라 온 것이 아닌지..
선생님은 일단 누우라고 했다.
누웠다.
마사지 베드 센터에 내 머리를 맞추며 내 이마를 만져보더니
“어이구 머리가 상당히 좋으신 분이 오셨네”그랬다.
또 내가 몇 마디 말을 하자
“목청이 좋으셔서 살면서 좋은 일 많으셨겠어요.” 그랬다.
전혀 없었다.
그런데 자꾸만 왜 뭉클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투박하고 포장지 없는 진실이 투두둑 떨어지는 듯했다.
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그런 칭찬받으니 전혀 다른 나라 말 같았다.
이 사람은 내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진 것, 내가 입은 것, 내가 가질 것, 내가 입을 것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지금 자신의 두 손안에 있는 나만 보이는 사람.
이 사람에겐 역사도 없이 지금의 나만 있다.
지금만 보이는 사람이 해준 말이라 목이 자꾸 칼칼해졌는지 모르겠다.
난 그 와중에 머리가 상당히 좋은 우울증 환자...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면
다시 슬퍼지지만 말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몇 분 대화를 주고받으며
선생님은 얼핏 여느 마사지사처럼 굴다가 다시 한번 말했다.
고통을 잘 참느냐고
지금 마사지한 정도의 고통을 말하나?
그거라면 괜찮은데
나는 영겁결에 “아 네..” 이랬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제가 이제 장침을 놓을 거예요.”
이게 뭔지 그때 알았더라면 당장 거기서 뛰쳐나오는 건데 젠장할
당장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뛰쳐나왔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고통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장침이 무섭지 않았다. *김기김 바다와 나비
나는 그게 뭔지 도무지 몰랐으므로
"아 네네.." 하고 선생님이 움직이지 말라던 오묘한 자세를 취하며
그대로 꼼짝 않고 있었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다시 한번 경고하더니
이내 옷 위로 침인지 몽둥인지 히드라인지 뭔가가 들어오는데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전근을 포함한 모든 골반 근육까지
전부 전기가 내려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참으셔야 해요"
"참으세요"
솔직히 선생님이 한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 너무 아파요 아 못해요 아 진짜로 아아아아아악악"
"조금만 참으세요"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차라리 소리 지르세요"
"네 차라리 소리 지르세요"
나는 피를 토하듯 소리 질렀다
핏줄이 서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고통에 내가 분리되는 것 같았다.
수 분내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이었다.
"흐아아아 악악아 아…."
"소리 지르세요"
"더 크게 소리 지르세요"
"차라리 소리 지르세요"
"몸이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게 밖.
나는 어안이 벙벙해 여전히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뭐지…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 멍해져서 머리가 멈춰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판단이 보류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날아가 버렸다.
'더 참았으면 더 고칠 수 있었는데요'
'이런 건 저희가 한 번에 고쳐요. 진작 찾아오시지 그랬어요'
이런 말들이 토막으로 기억났다.
겨우 정신줄을 잡고 그때 일이 추합 된 건 그 주 정신과 치료가 있을 때였다.
정신과의사는 '장침'이 뭔지 알고 있었다.
장침을 모르던 흰나비였던 나. 햄스트링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사실 '장침', '비명' 이것으로 밖에 수렴되지 않은 그날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큰소리를 내 본 적이 없다. 소리 질러 본 적도 당연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여아가 자라면서 고함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의 남아들은 학교 다닐 때는 몰려서 축구할 때 소리 지르고
그 외에 다 커서도 틈틈이 고성방가까지 섭렵할 때
여자에게만 흉흉한 세상에 소리 지를 때도 그렇게 나오지도 않는다..
그렇게 앞도 뒤도 없이 소리 지를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때 어리둥절한 공기도 공기였지만 내가 소리 지르고
있다는 상황도 너무 낯설었다.
처음 소리 지를 때는 이 가게 현관을 걱정하다
더해서 1층 가게까지 생각이 미치다
더가 이 건물 앞 4차선 도로까지 신경 쓰였다.
4차선 뒤에 있는 공원의자에까지 들리고도 남을 비명을 지른 날이었다.
벌써 몇 년 전일인데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사 풀린 듯 하관이 풀려 멍해지려 한다.
그런데도 이따금 바람 따라 꽂힌다.
그 장침 말고, 그 백만 볼트 말고
아저씨가 해준 말.
차라리 소리 지르세요
더 크게 더 크게
차라리 소리 지르세요.
몸이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몸이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그 입에서 나오자 찾을 말이 없었다.
정신이 아픈게 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앞에서는 퍼렇게 젊고 고작 이 정도 통증을 가지고 온 나만 남아있었다.
예전에 선생님이 내게 팝퀴즈를 하나 낸 적이 있었다.
몸이 힘든 것이랑 마음이 힘든 것 뭐가 더 힘들까?
그때 내가 알바 2-3개씩 돌리며 몸이 떡이 되었을 때였다.
음.. 몸… 이요..?
그래.
몸은 쉬면 낫는다.
그런데 정신은 그렇지가 않아.